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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12. 2020

< 변화 >

2020. 7. 14. D-171

“논문으로 쓰고 싶은 주제가 세 가지 있어. 이걸 모두 써보고 싶은데, 어떻게 보여야(논증해야) 할지 고민이야.”

“연구실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런데 관련성이 적어 보이는 주제로 각기 다른 논문들을 쓰면 직접 쓴 게 아니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 실제로 그런 학자들이 있거든,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인데 이름만 들어간. 딱 티가 나.”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박사과정까지 거친 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준비하는 사실상 ‘이미 학자’ 선배가 후배인 나의 피와 살을 북돋았다.


요즘 다이어트를 해서 그런가. 타당함을 갖춘 의견인데도 약간의 불편함이 올라왔다. 꽉 차 있던 싱크대 물을 흘려보낼 때 배수구가 토해내는, 흘려보내는 양에 비해 훨씬 적은, 그리고 이내 흘러내려가는 딱 그 정도였다. 결국 구중(口中)을 벗어나지 못한 물은 다시 식도를 거쳐 가슴속에 파묻혔다.  


퇴근 후 집에 와보니 책이 한 권 와 있었다. 기자 시절,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선배가 여전히 챙겨주는 마음이었다. 본인이 저자는 아니었지만, 차라리 저자라고 보는 편이 나을법한 사실상 ‘한 몸’인 지인의 책이었다. 나와도 면식이 있는 분으로, 학자이며, TV 속 강연자이며, 작가이며, ‘정조’ 전문가로 알려진 분이었다. 이번에도 ‘정조’의 리더십을 담은 보따리를 풀어냈단다. 현직 대통령이 대선 과정 중 마지막 TV연설에서도 “‘정조’의 정책을 계승할 것”이라고 호언했을 정도라니, 시의성까지 갖춘 호저(好著) 임에 틀림없었다.



마음속에선 일기토가 한바탕 벌어졌다. ‘역시 자기가 좋아하고 애착이 있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시고, 알고 있는 작은 부분까지 기록으로 남겨 후학을 위해 힘쓰시는 참된 학자’라는 생각과 ‘또, 정조’라는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 가슴속에 파묻혔던 조언이 떠올랐고, 이내 파묘(破墓)했다. 학계 선배의 이야기대로라면 이 책은 누가 봐도 그분이 쓴 것임에 분명했다. 박사학위 논문부터 저서와 강연 내용까지 그분은 ‘정조’를 지자체장이 정책에 대해 가르침을 구하고, 도올 선생까지 이 분의 책을 공부한 뒤 ' 정조'에 대한 강의를 한다고 하니 현시점에 '정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가 저자라는 것에 티끌만 한 가시랭이조차 불필요했다.


그럼에도 불편함이 느꼈던 이유는 아마도 그 ‘일관성’ 때문인 것 같다. 안정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집으로도 평가받을 수 있는 그것. 시간의 흐름을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는 듯 과거의 현재화를 추억하는 것. 더 나아가 사라지는 행태의 보존을 추구하고, 혹여 형체가 사라진다 해도 부재의 존재마저, 영원하길 갈망하는 것. 과거의 영광을 강조하고 고집하는 부적응의 표출의 다름이 아닌.


조선은 망했다. 쇄국 정책으로 대표되는 망국의 특징인 ‘일관성’ 때문이었다.  망조 찬미는 역설이다. 비단 백여 년 전만의 아주 드문 딱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흐름에 몸을 맡기지 않아 패망한 왕조는 역사 속 일컬어지는 왕조의 수와 정확히 일치할 것이다.


현시점, ‘일관성’의 추구하는 행태는 우리 곁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아기자기한 바닷가 마을을 보존해야 한다며 항구를 건설하지 않는다거나, 우물이 익숙하다며 상수도 연결을 거부하는 행위 따위다. 은총이 듬뿍 담긴 복을 받아야 한다면서 산 자에게 욕하면서 죽은 자의 상차림에 정성을 다하는 행위 또한 이러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보다 더 가까인, 집안 어른 중 한 분은 한 지역에서 가장 알토랑 건물을 소유했었다. 자타공인 부자였다. 학생들이라면 반드시 지녀야 할 물품을 사실상 독점 취급했고, 공공기관에 납품도 했다. 성실하게 묵묵히 일했다. 20대 때 이미 아파트 수십 채의 주택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변화하지 못했다. 여전히 해당 건물 2층에 살고 있지만,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다. 부엌을 가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시간의 흐름 때문인지 계단을 오르는데 힘이 부치신단다. 여전히 LPG 가스통을 연결해야 하고, 시장이라도 한 번 다녀오면 녹슨 손잡이의 철제 계단을 아슬아슬 오른 뒤에야 비로소 누울 곳에 닿는다. 뒤늦게나마 간이 승강기를 설치했다고 들었지만, 시간은 훨씬 앞서 있었다. 처가 쪽에도 아파트 1개 라인 전부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노른자위 부동산을 가졌던 분이 있었단다. 하지만 이 분 또한 제때 변화를 하지 못한 탓에 현실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부에는 때가 없지만, 변화에는 때가 있다.


사진이면 충분하다. 그림과 같은 마을일지라도 변화가 필요하다면 사진 몇 장 찍은 뒤 불도저로 밀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넓을 박의 박사(博士) 여야지, 얇을 박의 박사(薄士)가 되어선 희망이 없다. 작금의 정치판에 뛰어들어 개혁정책을 펼쳐 보이고 싶다면 ‘정조’는 묻은 뒤, 현장을 찾아다니며 시민의 VOC를 청취하고 향후 정책 기조를 담은 책을 출간해야 한다. 과거의 데이터만을 근거로 한 정책은 새로운 문제를 확대 양산할 뿐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욕망이 터져 나와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을 것임을, 걸음마 배우는 아기가 넘어질 게 뻔하듯,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이상 오른 주식은 더 오를게 뻔해 보이더라도 기다릴 필요 없이 팔아야 하며, 사업장은 5년 안에 권리금 받고 넘겨야 한다.


당하지 말고 이끌어야 한다. 변화해 되돌아오는 부메랑을 피할 생각을 하지 말고, 궤도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인디언의 마을을 밀어버린 미국의 주가는 여전히 우상향이다. 과거사, 적폐 청산을 부르짖는 우리의 주가는 ‘U’ 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잘못된 역사의 책임을 묻고 악인을 처벌하는 것은 강렬하고 날카로운 칼을 지닌 자의 결단에 맡기고, 현재를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 (총독부를 부수고, 부끄러움을 환기한 리더십이 그립다.)


뚱이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는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뚱이가 내 나이가 될 때는, 정확히 내가 살아온 기간이 지난 후다. 그 기간 동안 4천만 원이던 신도시급 아파트는 14억 원이 됐다. 언어가 달라질 것이고 문화도 마땅히 다를 것이다. 나와 초등학생의 대화는 한국인과 미국인의 대화만큼이나 어색하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당한 이익에 감사하고, 단념한 뒤, 새로움에 도전하면 좋겠다. 애플의 신상품이나, 애니메이션 신작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닌, 주체적으로 변화를 이끌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아내의 안목을 닮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아내가 찍은 상품은 아니나 다를까 유행하곤 하니까. ‘90년대 생이 온다’ 책도, 바주카포 옷도, 아내의 시선이 머문 곳에 사람들은 끌리고 쏠리고 들끓었다.


“다 '때'가 있다. ‘박수칠 때' 도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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