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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12. 2020

< 남 탓 >

2020. 7. 27. D-158

“이게 다 그 학생들 덕분이죠.”

우리나라 판사 중 가장 유명한 인물, ‘호통’하면 떠오르는 판사가 TV 프로그램에 나와 남 탓을 했다. 피의자로 재판장에 선 청소년들로 인해 대통령 훈장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아이러니. 이유야 어찌 됐든 다른 이의 불행이 모여 훈장이 된 현실이었다.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지난 2017년 4월 6일 오전. 나는 수원지방법원의 한 법정 방청석 구석, 가장 낮은 곳에 앉아 있었다.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보도로 시작된 사건의 당사자 중 일부 인원에 대한 재판이었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판사의 목소리에 일어나 법정 안으로 올라간 뒤 증언을 했다. 방청석의 시선들이 나의 뒤통수에 집중되는 듯했다. 증언을 마친 뒤 판사에게 등을 보이자 비로소 시선들을 마주했다. 전에 보지 못한 눈빛들. 분노가 차올라있지만 차가웠다. 목 끝까지 뭔가 차올랐지만 차마 토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울었다. 견딜 수 없었다.


곧바로 서울 프레스센터가 ‘신문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의 관심 속에 언론계 최고 권위의 상을 수상했다.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수상소감을 했다. 전에 느끼지 못한 환대와 듣지 못한 박수소리였다. 주마등같이 스치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또 울었다. 견딜 수 없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법정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했나’ 싶었다. 공익을 위해서였다고? 아니, 그냥 가정파괴범이었다. 16명의 가장이 법정에 섰으니, 가족까지 적어도 50명을 고통으로 내몰았다. 반면 내가 쓴 기사를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어차피 나올 기사라면 굳이 내가 쓰지 않아도 됐다.


수상소감을 마치고 단상 아래로 내려오면서까지 이어진 박수소리에 ‘그래도 잘했다’ 싶었다. 유력 정치인들도 공익을 위한 일을 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이름 모를 국민들이 공포를 느끼기 전에 선제적인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 일에 대한 평가였다. 취재하고 보도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국가예산이 낭비됐을 거고, 피해지역도 확대됐을 것이라며 기쁨을 만끽했다.


대우가 달라졌다. 취재를 위해 공무원들을 만나면 전보다 좀 더 친절하게 다가왔다. 비판성 기사를 쓰면 곧바로 대안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로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따로 연락을 해왔고,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아는 척을 했다. 내가 아는 사람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뭔가 높아진 것 같았다.


사실 내가 한 건 많지 않았다. 누군가 정보를 줬고, 그 내용대로 업계 관계자를 만났고, 현장에 방문했다. 그런 뒤 내용을 종합해 받아쓰기하듯 보도했다. 수사기관에서 연락이 와 앞서 모은 정보 중 일부를 전달했고, 수사 결과를 다시 받아쓰기하듯 보도했다. 공공기관에서 연락이 와 앞서 모은 정보들을 전달했고, 개선방안을 또다시 받아쓰기하듯 보고했다. 한 게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뭔가 높아지기에 걸맞은 대단한 노력을 들이지도 않았다. 사실상 다른 사람들이 다 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높아진 건 나였다.


즐기진 못했다. 한 구석 미안함이 남아 있었다. 분명 올바르지 않은,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을 고발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행복하기만 했으면 소망하는 가족들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으리라. 칭찬과 명성은 이들의 불행과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호통’ 판사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 같다. 인터뷰 중 학생들에게 공을 돌리는 눈빛이 흔들렸다. 편안해 보이진 않았다. 불행이 있어야 했기에 다가온 영광이라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더욱 불행한 아이들이 많을수록 더 자주, 더 크게 호통쳤을 것이다. 나아가 죄가 있고, 갈등이 있기에 그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모두 다른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일었다.


결국 제로썸. 내가 잘된 건 내가 잘나서라기 보단, 다른 사람들의 존재 덕분이고,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때론 나의 존재가 다른 이의 영광에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불행도 기쁨도 모두 남 탓의 대상뿐이다.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을 통해 홀로 라떼를 끓이는 동안 옆에 있던 아내의 핀잔 탓에 흐름이 깨졌다.

“혼자 생각하고, 웃고, 슬퍼하고, 제발 그러지 좀 마.”

“아니 그냥, 생각하는 거야. 설명하기 어려운 생각이야. ‘또 저러다 말겠지’ 해”

“그러니까 차근차근 설명해보고 생각을 같이하자고. 내가 있는 이유가 뭐야?”

“알았어. 덕분에 설명하는 방법을 좀 생각해볼게.”


다행히 아내랑 이야기할 때는 ‘아내 탓’, ‘아내 때문에’보다는 ‘아내 덕분’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점은 놓치지 않았다. 기특했다. 이게 다 아내가 있는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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