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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12. 2020

< 기회 >

2020. 5. 20. D-226

“저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당연히 잘했다고 칭찬해줘야지.”

“스스로 잘못을 밝히고 용서를 구할 기회를 빼앗은 거 아닐까?”


쌍둥이 남자아이들의 육아를 아빠의 시선으로 그리는 TV 프로그램 일부를 유튜브로 접했다.


“빨리 안방에 가자요. 아니... 안방에 가자구요.”


쌍둥이 동생 A는 아빠의 옷을 잡아끌었다. 필사적이었다. 아빠는 귀찮은 듯 이유를 거듭 물었다. A는 필살기로 ‘그냥’을 선택했다. 적중한 듯했다. 아빠가 엉덩이를 떼고 방으로 향한 것이다. 그 순간 쌍둥이 형 B가 아빠를 부르며 손가락으로 화분의 꺾인 나무줄기를 가리켰다. 아빠는 “야”하는 괴성과 함께 사건 현장으로 다가가더니 B를 다그쳤다. A는 안방으로 가는 길목에서 세상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A를 비치는 화면 밑 자막에는 ‘#사면초가 #진퇴양난 #고립무원 #풍전등화’가 쓰여 있었다. 아빠의 다그침에 B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자신은 아니라고 하다가 범인으로 아빠를 지목했다. 장난스럽게 무마하려는 시도였으리라. 안 통하고 아빠의 다그침이 계속되자 B는 A를 한 번 쳐다보곤 A와 비슷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모르고 해떠.”


A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아빠는 범인이 밝혀졌으면 됐다는 투로 알겠다는 말과 함께 부러진 나무줄기를 화분에 무심이 꽂더니 엄마에게 함구령을 내리곤 B와 안방으로 갔다. 아빠는 자신의 안방행이 A의 요구였던 것을 잊은 듯했다. 거실에 혼자 남은 A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심을 한 듯 아빠에게로 향했다.


“아빠! 내가 사실대로 말할게.”
 “응? 뭘 사실대로 말해.”

“내가... 저거 모르고... 망가뜨렸어.....”         


슈퍼맨이 돌아왔다
#슈퍼맨이돌아왔다


아이들이 태어나 이런 경우가 생기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보니 아찔했다. A와 B는 모두 거짓말을 했다. A는 사실을 전부 말하지 않았고, B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의도를 따져보면 B의 의도는 A의 그것과 달리 선의였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또한 A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B가 빼앗은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어 보인다. 


사전을 찾아보니 ‘기회’는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를 뜻했다. 이런 측면에서는 B가 A에게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B의 시도에서 아빠의 반응을 확인하곤 A가 스스로 잘못을 들추어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렇다면 두 아이에게 모두 잘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자칫 거짓말을 한 과정까지 잘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아니면 혼내야 할까? 그건 또 아니다. 결국 제자리를 찾지 않았는가. 분리해 따져보면 어떨까. 


A에게 스스로 솔직히 얘기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한 뒤, 다만 처음부터 솔직히 말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고 해보자. 그럼 이 대화는 ‘아쉬움’으로 끝난다. 고맙다는 의미는 전달될 수 없을지 모른다. 아니면 순서를 바꿔, 처음부터 솔직히 말했다면 좋았지만, 끝내 용기를 내어 솔직히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고 해보자. ‘고마움’으로 끝나겠지만, 학습결과, A는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묵인하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그제야 말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A는 ‘언제나’ 솔직하지 않을 수 있다.


B에게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는 말을 한 뒤, 다만 다른 사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를 빼앗는 건 이기적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해보자. 그럼 결국 B는 이기적인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며 침울해 할 수 있다. 아니면 순서를 바꿔, 이기적인 행동일 수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에 감면받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해보자. 그럼 B의 성품에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는 이기심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순서를 달리하며 여러 번 이야기했다고 해보자. 아이들이 두 내용을 모두 이해할 때까지 끊임없이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그럼 A와 B는 모두 특정 상황에서 여러 대안을 동시에 생각 헤 어떠한 행동을 못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패의 기회까지 빼앗아 버리게 된다.  


아이들이 세상과 호흡하기 시작하고,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어떤 기회로 삼아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아이들의 마음이 보다 편안하고, 이들의 삶이 더욱 행복할 수 있는가. 답을 알 수 없는 고민이었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실제로 저런 일이 발생하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생각만 거듭할 뿐.


한 발자국 물러나 생각해보면, 지금 이 상황조차도 내게는 기회일 수 있다. 실전 육아에 앞서 간접체험을 하며 향후 직면할게 뻔한 상황을 연습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배움의 결과는 ‘답이 없다’이다. 아이러니하다. 아, 정답을 알 수 없는 상황을 앞으로 더 많이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배우는 기회인가 보다.


“역시 자기는 한 차원 높네.” 


대화는 끝났다. 칭찬으로 들리진 않았다. 평생을 따라다닐 질문의 늪에 첫 발을 디딘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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