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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12. 2020

< 나눔 >

2020. 5. 26. D-220

먼저 온 아이의 심장이 멎었다. 그 날, 젖은 얼굴을 맞대고 서로 부둥켜안았다. 3번 해일이 지나갔다. 이틀이 지났는데도 가라앉지 않았다. 월요일은 쉬고 화요일에 출근버스에 올랐다.


출근 버스에서 내려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편안한 얼굴로 음료를 나눠드리자’며 다짐했다. 사무실 출입문은 무거웠다. 힘을 내밀었다. 온몸으로 밀어붙였다. 사무실에는 가장 젊은 선배 한 명이 먼저 출근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네, 오셨어요.”


평소와 같았다. 5명의 선배를 더 맞이해야 했다. 선배들이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자리에 가방을 두곤 탕비실 공간 칸막이 속에 몸을 숨겼다. 무의미하게 전기코드를 연결하곤 엄지를 치켜들고 커피머신의 전원 버튼을 짓이겼다. 선배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는 시선을 짓이기는 엄지에 고정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야 했다. 성문을 스스로 열고 적진을 향하는 장수의 마음이 이러할까? 고개를 들고 입 꼬리를 살짝 올렸다. 키만 한 성곽의 출입 공간을 돌아 나와 자리까지 가는 동안 고개는 뻣뻣했다. 1.5m 남짓 움직이는 동안 장님이었고 귀머거리였다.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챙겨 온 음료들을 에코백 바깥으로 출하했다. 6병이었다. 6번을 해내야 한다. 하나를 들어 아버지와 꼭 같은 나이의 선배께 먼저 갔다. 음료를 드리곤 고개를 숙였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괜찮아?” 

“네”


담백하진 않았다. 반문으로 돌아온 답은 생각을 거쳐 감정에게로 갔다. ‘괜찮습니다.’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그 말과 함께 목구멍을 통해 올라오려는 다른 것을 느끼곤 그럴 수 없었다.

옆자리 다른 선배에게 몸을 돌렸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에이~ 무슨 심려야.” 


심려. 마음을 써서 깊이 생각함. 가볍게 넘기려는 듯한 그의 대답에서 되레 심려가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얼굴을 구성하는 것들이 온통 내 쪽으로 향해 있었다. 삐죽삐죽하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점프를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아래턱이 조금씩 다가왔다.


“네가 괜찮아야지.”

“......”


입술이 길고 얇게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이가 입술을 막았다. 이를 살짝 벌린 뒤 집요하게 침투하려는 입술을 생포했다. 살짝 고개를 숙여 대답을 갈음했다.

다행일까, 본사에서 회사를 방문하는 일정이 있어 다들 분주했다.


표정을 뒤통수에 가린 채 자리에 앉았다. 앉은키보다 높은 모니터 두 대를 마주하고 웅크렸다. 업무용 홈페이지 로그인 페이지를 통해 접속하려는 순간, 온 신경이 코 끝으로 모였다. 터져 나오려는 걸 느끼곤 침을 꼴깍 삼켰다. 턱을 살짝 들고 눈알을 좌우로 돌렸다. 이로 입 안을 훑으며 구석까지 침을 모아 연신 들이켰다. 숨을 크게 들어 쉬곤 다시 삼켰다. 45도로 고개를 숙이곤 차분히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뚱이땡이1231!’

존재만으로 벅찼던 순간, 아로새긴 비밀번호. 힘을 돋우는 주문. 희망찬 기도. 하루의 시작. 


오른손 중지와 약지를 엔터키 위에 놓곤 점프를 뛰었다. 화면이 변하지 않았다. 시선을 엔터키 위로 옮겨 다시 뛰었다. 또 뛰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려 세 번을 연속해서 뛰어내렸다. 


“쿵쿵쿵”


보통 키보드의 소리는 ‘딱’에 가깝지 않았나? 엔터키가 손가락을 품을 때마다 소리는 계속됐다. 거칠게 뛰어내려도 엔터키는 두 손가락을 온몸으로 품었다. 배구 경기에서 스파이크 공격을 받아내는 리베로의 리시브 소리와 달랐다. 노란색 당구공이 하얀색과 빨간색을 차례로 마주할 때의 그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투수가 던진 공을 받는 포수의 미트가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피구공을 ‘ㄷ’ 자로 만든 팔로 받을 때의 그것에 가까웠다.


엔터키가 뱉어내는 소리 입자가 고막을 거쳐 폐부에 내리 꽂혔다. 묵직했다. 명치 부위가 답답해 왼쪽 눈을 찡끗 감으며 침을 모아 눌러봤다. 헛 트림이 꾸역꾸역 호흡을 방해했다. 포박에서 벗어나고자 좌우로 몸부림치던 입술을 풀어주고 숨을 깊게 들이켰다 내쉬었다. 배꼽부터 명치, 가슴팍까지 들썩였다. 파도였다. 숨을 참았다. 곧바로 오른쪽 날갯죽지에 담이 왔다. 숨을 토해냈다. 더 높이 올라오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앞의 두 방어막이 얇게 느껴졌다. 뚫릴까 봐 두려워 입을 닫았다. 코를 거친 숨이 엔터키로 향했다.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중지와 약지로 추락했다. 손가락을 급히 오므렸다. 약지는 엔터키 옆으로 빗겨 섰지만 중지는 엔터키 위를 미처 벗어나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봤다. 전등은 눈이 부시게 빛을 뿜었다. 지난주의 모습과 같았다. 가슴을 끝까지 올려 숨을 들이켰다. 헛 트림과 함께 숨을 내뱉었다. 한껏 올라왔던 가슴과 함께 시선도 홈페이지로 가라앉혔다. 화면이 바뀌어 있었다. 음료 4병도 눈에 들어왔다. 엄지와 중지, 약지로 음료 1병을 집었다. 가장 먼저 출근해 있었던 옆자리 선배에게 팔을 뻗었다. 선배는 음료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요했다. 다시, 입꼬리는 올라갔고 입술은 안쪽으로 침투를 시작했다.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니, 6번 다 해내면 1/64만큼만 남아있으리라.' 소원하며 귀만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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