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패션
나도 한 때 옷 좀 입었다. 결혼 전 회사를 다닐 때는 직장 여성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오피스 룩을 즐겨 입었다. 깔끔한 흰 블라우스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까만 정장 치마, 치마와 깔맞춤 한 까만 재킷까지 완벽하고도 당당한 장례식 룩, 아니 현대 여성 룩으로 마포 거리를 활보하였다. 그러다 주말에는 조금 더 캐주얼하고 스포틱 하고 엘레강스하고 이건 아닌가, 뭐 암튼 다른 스타일로 변신을 하였다. 상의는 어두운 색을 입어 주면 날씬해 보인다는 나만의 소중한 패션 팁이 있었으므로 주로 검은색을 입었다. 하의는 상의와 통일함으로써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검정 바지 또는 검정 치마와 검정 스타킹을 즐겨 신었다. 여성스러움이 한 방울 필요한 날이면 원피스를 꺼내 들었다. 당연히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을 입었다.
그렇다. 사실 나는 패션 고자이다. 패션 감각이란 1도 없는 요즘 말로 패. 알. 못(혹시 모르실 분들을 위하여 설명하자면 패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란 뜻이다.)이다. 친정 가족들 사이에선 '패션 테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 친구는 나를 '그림자 인간'이라 불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와 키 차이가 10cm 나는 핏이 다른 패. 잘. 알(패션 잘 알고 있는 사람) 여동생이 있다는 것이다. 결혼식이나 동창 모임 같이 특별한 날이면 엄마와 동생은 약속 시간 몇 시간 전부터 나의 패션을 구제하고자 머리를 싸맸다. 나는 인형처럼 그들이 입으라면 입고, 걸치라면 걸치고, 신으라면 신고 모임 장소에 나갔다. 물론 모든 아이템들은 동생의 협찬으로 이루어졌다. 동생은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 한철 입은 옷들을 나에게 버려 주었다. 나는 그게 작년에 크게 유행한 것이지도 모르고 1년 후 줄기차게 입고 다니며 뒷북 패.피(패션 피플)를 자처했다.
그나마도 결혼 전까지였다. 결혼할 때 내 옷을 챙겨보니 정말 몇 개 없었다. 안되어 보였는지 엄마와 동생이 옷가지 몇 개를 기부해 주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혼하고 한 달 만에 아이가 생겼고 나의 첫 패션 독립 아이템은 임부복이 되었다. 그리고 출산을 하고도 얼마간은 이 임부복으로 버텼다.(출산 전과 후의 몸무게 차이는 딱 아이 몸무게만큼이었다.) 어차피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와 씨름을 하려면 임부복만큼 편한 옷도 없었다.
그래도 외출해야 할 때가 있었다. 뭔 놈의 주사를 그렇게 많이 맞혀야 하는지 돌아서면 아이 예방접종 날이었다. 그럴 때면 결혼 전에 입던 청바지를 낑낑대며 입어보다가, 패대기치고 노려도 보다가, 결국 엄마가 준 고무줄 롱치마를 입고 나갔다. 그래도 청바지는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 최대한 밑위길이가 긴 밴딩 청바지를 하나 샀다. (젊었을 땐 몰랐는데 밑위길이가 바지의 편안함을 좌지우지한다.)
아이가 조금 크자 임부복을 벗어나 결혼 전 루즈 핏으로 입던 티셔츠들과 추리닝(절대 트레이닝복으로 부를 수 없는 것들이었다.)이 나의 주된 패션이 되었다. 특히나 추리닝 바지를 고르는 기준은 엄격했다. 배가 낑겨 자국이 남거나 길이가 길어 치렁치렁한 것들은 탈락이었다. 발목 부분에 시보리가 있어 아이를 씻기거나 다리로 놀아줘야 할 때 쫙쫙 올라가 단단하게 고정될수록 나의 생활 교복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이의 얼굴에 닿을 수 있는 티셔츠들은 자주 빨아야 했으므로 부족하다 싶으면 슬쩍 남편의 티셔츠들도 가져다 입었다.(아주 편안하게 잘 맞았다. 흑흑)
가끔 집에 가스 검침 아주머니나 택배 기사 아저씨, 아파트 소독하는 아주머니와 같이 예상치 못한 손님이 들이닥칠 때면 양심 상 문 열기 전 재빨리 거울을 봤다. 며칠 안 감아 떡진 머리, 목이 늘어나 살짝 섹시해진 티셔츠, 전투적인 무릎이 돋보이는 추리닝 바지까지. 가관이었지만 그 와중에 속옷 챙겨 입을 정신은 없으니 두꺼운 카디건이나 패딩 조끼를 입어 저세상 패션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들이 할 일을 마치고 가면 왠지 모를 불안감에 다시 한번 거울 앞에 섰다. 상황 다 끝난 마당에 뭘 더 확인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괜히 머리도 한번 만져 보고 늘어난 옷도 추스르고 추리닝 무릎을 꾹꾹 넣으며
'뭐 다들 집에서 이러고 있겠지?
저분들은 이런 꼴 많이 봐서 신경도 안 쓸 거야.' 하며 정신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를 뒤적이다 한 살림 관련 영상을 보게 되었다. 주부의 일상을 보여주는 이 영상은 밝은 햇살,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로 시작된다. 이미 먼지 한 톨 없어 보이는 집안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청소기로 돌리고, 걸레도 아닌 리넨 천으로 쓱싹쓱싹 가구를 닦는다. 나는 계절마다 하는데 원래는 매일 하는 거였나 혼란스럽게 이불 빨래를 자주 하시고, 네모 반듯한 우드 도마에 사각사각 정갈하게 재료를 썰어 우리 집에 있는 스뎅 볼이 아닌 유리볼 담아 재료를 섞는다, 그 결과 카페 못지않은 비주얼의 브런치가 완성된다. 잔잔하게 깔린 bgm과 함께 이 영상을 보고 있으니 힐링이 이런 건가 싶었다. 대리 만족하는 기분으로 몇 편을 연달아 보고 나자 문득 나는 왜 저 모습이 안 되는 걸까 궁금해졌다. 처음엔 집의 문제라고 생각되어 이리저리 소품도 바꿔보고 쓸고 닦고 해 봤는데 뭔가 하나가 빠진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영상을 보며 분석한 결과 머릿속을 휙 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파자마!!
나는 티 쪼가리에 무릎 나온 추리닝을 입고 있는데, 아름다운 그녀는 베이지 색 체크무늬 파자마에 그 비슷한 색깔의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그렇다! 나의 생활 교복으로는 아무리 고급져 보이는 브런치를 만들고 있어도 뒷모습을 카메라로 찍는다면 양푼에 비빔밥 비비는 비주얼밖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유레카를 외치며 그 자리에서 베이지색 체크무늬 파자마를 샀다. 반드시 넥 부분엔 카라가 있어야 하고, 단추가 있어야 하며, 위아래 세트여야 한다. 물론 발목의 시보리는 포기해야 했다. 생각보다 가격도 비쌌다. 파자마 위아래 한벌로 샀더니 족히 3만 원은 줘야 했다.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왠지 지금이 아니면 살 수 없을 것 같아 눈 꼭 감고 결제했다.
역시 파자마의 위력은 대단했다. 파자마 하나로 나는 넓은 2층 집에 사는 미국 아줌마가 된 것 같았다. 집 안에서도 갖춰 입고 사는 센스 있는 여성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하나로는 부족하다 싶어 그림자 인간답게 남색 계열로 하나 더 지르기로 하였다. 물론 체크무늬로. (왠지 체크무늬가 고급져 보인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집에서 잠옷 입고 있는 여자로 보이겠지만
나는 내가 집 안에서 입을 옷을 선택하였다.
이 점이 몹시 만족스러웠다. 그저 집안에 굴러다니는 옷을 대충 걸쳐 입는 게 아니라 전업 주부로서 나의 작업복을 선택한 기분이 들어 즐거웠던 것이다.
옷에 대해 1도 모르던 나는 이 계기로 패션에 조금 관심이 생겼다. 옷이 주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그거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집 밖에서는 쭈글이지만 우리 집 안에서만큼은 나는 파자마 패.피이다.
봄이 온다. 날이 더 따뜻해지면 실크 파자마에 도전할 것이다. 더 더워지면 예쁜 반팔 파자마도 사야지.
작업복 살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