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자이저와 집순이

연애할 땐 몰랐던 서로의 실체

by 또랭


남편과 나는 여느 집처럼 성향이 엄청 다르다. 특히나 '쉼'에 있어서 가치관이 거의 반대이다 싶을 정도인데, 또 여느 집처럼 연애할 때는 이것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편과는 소개팅으로 만나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처음엔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이 속한 부서는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먹듯이 하는 회사 내에서도 악명 높은 팀이었고 연애를 막 시작한 우리 커플은 평일은커녕 주말 중 하루라도 얼굴을 보면 다행일 정도로 만나기가 힘들었다. 오늘은 일찍 끝날 것 같다는 연락에 남편 회사 앞 카페에서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다가


'딱 30분만 더 하면 될 것 같아.'

'보고만 드리면 갈 수 있을 것 같아.'

'미안해. 오늘 늦게 끝날 것 같아. 어떡하지?'


라는 카톡을 받고 혼자 돌아가는 날도 많았고, 주말에 만나기로 했다가 남편의 갑작스러운 출근 때문에 데이트가 무산되는 날도 많았다.(심지어 만났다가 전화 한 통에 바로 회사로 출근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운하지 않았다. (진짜) 왜냐하면 남편은 전날 새벽 1~2시까지 일을 하고도 다음 날 데이트가 있으면 아침 9시부터 나를 보러 오는 열정남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이 믿고 있는 연애 이론 중에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를 보러 온다는 것이 있는데 남편은 이 이론을 충실하게 지켜줬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해서 귀찮을 법도 한데 당일치기로 기차 여행을 계획할 만큼 남편은 나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우리의 데이트 계획은 항상 남편이 짰는데 '종로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신촌의 예쁜 카페를 알아뒀으니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저녁은 가로수길에서 맛있는 걸 먹자.'같이 구를 넘나드는 위대한(?) 계획들이었다. 남편은 늘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는 사람이었다. 뭘 하나 먹든, 보든, 제대로 해야 했고 그에 비하면 나는 메뉴판을 보고 있어도 '난 아무거나 괜찮아. 오빠가 골라.'만 반복하는 줏대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을 따라 데이트하면서 정말 별별 곳을 다 가봤는데, 어느 날은 갑자기 대부도에 가자고 했다. 바지락 칼국수라도 먹는 건가 싶었는데 웬 낯선 천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말로만 듣던 '봉춘서커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남편은 꼭 한번 보고 싶었던 것이라며 정말 즐거워했고 이 데이트 상황을 SNS에 올린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색 데이트녀'로 단박에 각인되었다. 그 밖에도 '아산 시티투어', '9시에 수원터미널에서 만나 보이는 목적지 아무 곳이나 정해 무작정 떠나보기', '생태마을에서 쏟아지는 별 보기', ' 위인 및 유명 작가의 생가 방문하기' 등 연애를 하는 2년 동안 코피가 날 정도로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나는 이러한 남편의 노력들이 고마웠고 우리는 그 누구보다 코드가 잘 통하는 연인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자, 이 생각들이 얼마나 동상이몽이었는지 하나둘씩 드러났다. 남편은 주말이 되면 연애할 때처럼 주말 나들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난 예전같이 따르지 않았다. 사사건건 토를 달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같이 바람 불고 추운데 애를 데리고 어떻게 거길 가."

"거기는 아기 의자도 없는데 딴 데는 없어?"

"애 데리고 거기 가면 어차피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데 그냥 가지 말자."


처럼 나의 거절 이유는 항상 아이였다. 남편은 갑작스러운 나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매번 즐겁게 따라주더니 왜 갑자기 불만 덩어리가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나대로 답답했다. 도대체 아이의 존재를 인식은 하고 있는 건지. 아이 데리고 거길 가면 힘든 상황들이 생길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왜 그것까지 예상을 못 하는지 화가 났다. 특히나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내일 여행이나 갈까"라는 말에 밤새 아기 분유를 소분하여 비닐에 넣고 분유 포트와 젖병들, 젖병 씻을 솔, 아기 세제, 혹시 몰라 한 개만 더, 더 하며 챙기게 되는 기저귀들, 아기 옷들, 가면서 먹일 물을 끓여 식히고 넣은 보온병, 각종 비상약, 체온계 등등을 챙기다 보면 저절로 쌍욕이 나오고 옆에서 팔자 좋게 코 골고 있는 남편 코를 비틀어버리고 싶어졌다.(사실 몇 번 비틀었다.) 가서도 안절부절 아이가 다치진 않을까, 더럽진 않을까, 춥진 않을까, 덥진 않을까 늘 걱정만 앞서 풍경이든 밥이든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히나 밤에 잠을 재우면 아이가 낯선 곳임을 아는지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우는 통에 안 그래도 모자란 잠이 반토막난 기분이었다.


이쯤 되면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거의 '인격 수양의 장' 정도로 생각이 된다. 익숙한 집에서 육아를 하면 편하기라도 하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 와서 이러고 있나 매번 갈 때마다 후회를 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자 나는 다시 집순이로 돌아가 '무조건 집이 최고다. 이불 밖은 위험해.' 정신으로 남편의 계획들에 계속해서 토를 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면서 알았다. 결혼 전 나에 대한 노력으로 보였던 남편의 계획들은 남편만의 '쉼'이었다는 것을. 남편은 시간을 헛되이 쓰는 것을 정말 싫어했고 안 그래도 회사 때문에 없는 개인 시간을 집에서 빈둥거리며 보내는 걸 너무나도 아까워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뭐라도 보고, 뭐 하나라도 해야 주말을 잘 보냈다고 생각했고 그 힘으로 다음 주를 버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주말의 낮잠이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으며,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하루 종일 먹고 TV를 보는 것이 가장 큰 휴식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싸돌아다녀야 사는 '에너자이저'와 집안에서 배 깔고 누워 있어야 사는 '집순이'가 만났으니 아이 문제가 아니어도 싸움의 여지는 충분했던 것이다.

수많은 싸움을 통해 우리는 주말 협의서를 작성했다. 토요일은 남편이, 일요일은 내가 계획을 세우고 잔말 없이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1박 2일 여행을 가고 싶을 땐 서로 간의 협의 후 가기로 하였다. 그 밖에도 자질구레한 조항들을 15개나 만들어 게시판에 떡하니 붙여놨는데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걸 볼 때마다 뭐냐고 한 번씩 물어본다. 이 중 남편이 가장 중요시하는 조항은 '정해진 계획은 서로 간 존중하며, 즉각 실행한다.'인데 무슨 계획을 세우든지 불만 달지 말고 무조건 따라 달란 이야기이다. 그에 반해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조항은 '무계획도 계획임을 인정한다.'이다. 즉, 아무것도 안 하고 오늘은 그냥 집에 있자고 하면 이것 역시 빈둥거린다며 한심하게 보지 말고 하나의 계획임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누가 보면 뭘 유난스럽게 저런 것까지 만들까 싶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도,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은 없다.


우리는 이를 인정했고 서로의 쉼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몇 달 전부터 심각해진 코로나의 여파로 사실상 나의 집순이 계획만이 실천되고 있어 남편은 울상이다. 그래도 그 와중에 '아이와 쿠키 만들기', '우리 가족만의 주말의 명화', '아이와 베란다에 딸기 심기'는 물론이고 수수깡과 셀로판지를 사서 아이와 안경 만들기를 하겠다고 했을 땐 '이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인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따뜻해진다. 집콕이 한 달을 넘어간다. 이제는 못 이기는 척 남편의 계획에 따라 놀러 다니고 싶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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