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화장실에 갈 자유

아줌마가 뻔뻔해지는 이유

by 또랭

엄마가 되려면 많은 굴욕을 이겨내야 한다. 제일 먼저 자연분만을 하려면 꼭 거쳐야 하는 3대 출산 굴욕이 있다. 바로 관장, 제모, 내진이 그것이다. 뭐, 이 이야기야 검색창에 '출산일기'만 쳐 봐도 수두룩 빽빽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찾아보길 권한다. (미혼 여성이라면 안 읽기를 추천한다. 애 낳기 싫어질지도 모르니.)

다음은 '가슴 까발리기' 굴욕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를 낳으면 며칠간 산부인과에 입원을 하게 되는데 이때 간호사 분이 아이에게 젖 물리는 법을 알려 주신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간호사 앞에서 윗옷을 까고 가슴을 내놓고 있는 것도 민망한데 잘못된 자세를 고쳐 주신다며 가슴을 이리저리 누르고 만질 때면 저절로 귀가 붉어졌다. 거기다가 나와 똑같은 자세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다른 산모까지 있다면 우리는 왜 이런 상황을 이다지도 자연스럽게 겪어 내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많은 애엄마들이 말하는 굴욕이 있다면 처음 유축기를 사용할 때이다. 생각보다 흡입력이 세기도 하고, 기계음에 맞춰 뽀얀 모유가 쭉쭉 젖병에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 '젖소가 이런 기분인가' 싶으면서 사람도 동물의 한 종이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꽤 오래, 그리고 강하게 남는 굴욕이 있다면 바로 아이 보는 앞에서 볼일을 보는 것이다. 그나마 신생아 시절에는 아이가 잠자는 시간이 많아 재빨리 해결하고 나오면 됐다. 그러나 분리 불안이 생기면서 아이는 잠시만 엄마 얼굴이 안 보여도 집이 떠나가라 울었고 궁여지책으로 아이를 화장실 앞에 눕히거나 앉혀 놓고 일을 보게 된 것이다. 내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 움직이는 똘망똘망한 아이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하아 나는 인권이란 게 있는 건가. 이대로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떤 엄마들은 그마저도 아이가 기다려 주지 않아 용변을 볼 때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해결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그래도 나는 살만한 게 아닌가.’ 초라한 안도감마저 들기도 했다.


집 안이면 차라리 낫다. 아기띠를 한 채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물도 잘 마시지 않았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그야말로 웃픈 상황들이 펼쳐졌다. 혹여 긴 윗옷이라도 입고 온 날이면 안 나오는 윗옷을 억지로 빼낸 후 한 손으로는 아기 엉덩이를 받혀 몸무게를 지탱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꽉 조여 놓은 아기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이지도 않는 작은 단추와 싸워야 했다. 정말 어찌나 단추가 안 풀리는지 몇 번을 시도하다 도저히 안 될 땐 그냥 이대로 바지에 싸는 게 더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암튼 요즘 백화점 화장실을 보면 화장실 칸 안에 아기를 앉혀놓을 수 있는 공중 의자 같은 것들이 보이는데 이건 분명 나 같은 엄마들이 많았다는 증거이다. 아기 엄마들이 백화점이나 쇼핑몰 같은 곳을 자주 가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화장실과 수유실의 편리함 때문이다. 상가의 남녀가 같이 쓰는 화장실, 또는 양변기가 아닌 화변기로 되어 있는 화장실에서 아기띠를 한 채 볼일을 보는 건 정말 생각만 해도 가혹하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어느 순간부터 나는 화장실 앞,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아이를 앉혀 놓고 여유롭게 손까지 흔들며 "엄마 구경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해 주었고, 외출할 땐 단추와 지퍼가 있는 바지 대신 밴딩 바지와 긴치마를 애용하게 되었다.

아이가 기저귀를 떼야할 시기가 오자, 배변 교육을 핑계로 우리 집 화장실은 더더욱 활짝 열렸다. 문제는 아이 앞에서만 문을 열고 볼일을 봐야 하는데 아이가 없을 때도 문을 활짝 열고 일을 볼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가끔은 남편이 있을 때도 문을 닫는 둥 마는 둥 하고 들어와 일을 보다가 깜짝 놀라 문을 닫기도 하였다.


또 언젠가는 아이가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시기였는데 아빠를 보자 신이 나서 화장실에서 휴지를 뜯어오더니 자랑스럽게 엉덩이 닦는 흉내(정확히는 내 흉내)를 냈다. 교육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기저귀를 차고 있는 엉덩이를 말도 없이 참으로 정성스럽게 닦았다. 박장대소하는 남편 옆에서 나는 그저 얼굴이 빨개져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의 웃는 모습을 본 아이는 누구를 만나든지 화장지가 보이면 시도 때도 없이 엉덩이를 닦아댔다......


휴지로 엄마를 놀라게 하던 아이는 이제 다섯 살이 되었다. 수백 번의 설명으로 지금은 아이가 손을 내밀 수 있을 만큼만 문을 열고 일을 본다. 물론 아이는 그 틈새 사이로 손도 내밀고 발도 내밀고 끊임없이 이야기도 하지만, 이게 어디인가. 나는 나 홀로 화장실에 갈 자유를 다시 찾은 것이다.


아줌마가 되면 뻔뻔해진다고 한다. 나는 한때 이 말이 나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자는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이러한 굴욕의 단계들을 차근차근 겪으며 뻔뻔해지는 훈련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부디 아줌마의 이 뻔뻔함을 너무 나쁘게 보지만을 말아주길 바란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생리현상과 맞바꾼 눈물 나는 모정의 작은 부작용 같은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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