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정 속옷은 누가 사나

누가 사긴 내가 사지

by 또랭

결혼 전엔 이해하지 못했다. 홈쇼핑에 그렇게도 많이 나오는 보정 속옷들을 도대체 누가 다 살까? 그렇다고 나 역시 보정 속옷이 전혀 필요없을 만큼 날씬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저 작은 천떼기에 몸을 욱여넣느니 날씬해 보이는 옷들을 찾는 게 더 빠르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깨달았다. 이건 숨 좀 참고 배 집어넣어서 될 문제가 아니다. 탄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바람 빠진 풍선. 내 배가 바로 딱 그 꼴이었다. 바지를 입을 땐 분명 그 속에 꽁꽁 넣어두었는데 조금만 움직이면 어느샌가 빠져나와 바지 위로 두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이 들었다.


보정속옷을 사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홈쇼핑부터 인터넷까지 싹다 뒤져 눈이 빨개지도록 비교하고 또 비교하여 한놈을 골랐다. 탄탄하면서 그렇다고 너무 답답해서는 안되며, 실리콘이 덧대어져 있어 절대 말려내려가지 않는다는 그놈의 보정속옷을.


보정 속옷의 진가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모임, 또는 결혼식에서 발휘된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여도 애 낳고 푹 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여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요즘 아기 낳고도 철저한 자기 관리로 아가씨 적 몸매를 유지하는 친구가 어디 한둘인가. 마른 것들은 애 낳고도 다시 마르는 건지. 애 보느라, 또는 잠을 못자 살이 쪽 빠졌다는데, 아니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나만 왜 이렇게 인심 좋아 보이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완전범죄를 꿈꾸며 뷔페 음식들을 목구멍에 집어 넣는다. 간간이 배를 쓰다듬으며 아직은 무너지지 않은 탄탄한 벽을 확인한다. 오랜만에 본 친구들과

"어머, 너는 그대로다."

"누가 널 애기 엄마로 보겠니?"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로 서로를 칭찬하며 정신없이 먹다보니 신호가 온다.


'더이상은 무리다! 즉각, 식사를 멈춰라!'


꾸륵거리며 반항하는 장기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뷔페 온다고 아침부터 굶었는데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남은 자리가 얼마 없다면 최대한 단가 높은 걸로, 집에서 해먹기 힘든 걸로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어야 한다.


'할 수 있다! 최대한 서로간 밀착하여 자리를 양보하라!


가까스로 조금 더 집어넣었다. 다시 배를 쓰윽 만져본다. 믿었던 보정속옷의 탄탄한 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비상이다.

하아. 이거까진 안 쓰려고 했는데..의자에 걸어놨던 쬐깐한 핸드백을 슬쩍 배 앞으로 가져다 놓는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아무도 나의 이 이 범죄를 알지 못할 것 같다.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기 때문에 커피와 케이크까지 야무지게 더 밀어 넣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도착해 오늘 하루 동안 수고한 나의 뱃살들에게 자유를 준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잠깐 세상이 노래지고 얼굴이 하얘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선방했다.

장기들과 오늘의 성공담을 자축하고 있는데 저만치 널브러져 있는 보정속옷이 보인다. 그리고 그제야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진짜 내 몸이 눈에 들어온다. 헛웃음이 나온다. 이 몸을 저 작은 천떼기에 재주도 좋게 넣었구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같은 것도 떠오른다.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아니 조금 뿌듯하기도 한가? 나름의 소감을 되씹고 있는데 지이잉 문자가 온다. 친구가 오늘 찍은 사진이라며 단체채팅방에 사진을 올리는 중인가 보다. 반가운 마음에 냅다 핸드폰을 잡았다.



사진1. 두 턱으로 해맑게 브이하고 웃고 있는 나.

사진2. 바로 옆 친구의 1.5배의 팔뚝으로 얼굴 작아보이겠다고 꽃받침 만들어 얼굴 감싸고 있는 나.

사진3. 하필 신부 옆에 서서 날씬하게 보이겠다고 45도 각도로 섰지만 원피스 위로 귀여운 뱃살이 까꿍하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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