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에게 커피를 빼고 인생을 논하지 말라.

단쓴단쓴의 묘미

by 또랭

나의 첫 커피는 초등학교 때 과자 에이스에 살짝 묻혀 주던 엄마의 믹스 커피였다. 엄마 옆에서 한 입만 얻어먹으려고 강아지처럼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는

"커피 많이 마시면 안 돼, 머리 나빠져!"

를 꼭 외치며 야박하게 에이스 한 귀퉁이를 믹스 커피에 살짝 묻혀 건네주었다. 눅눅해진 에이스 사이로 커피 맛을 애써 찾아 느끼며 이렇게 달콤한 것이라면 머리가 나빠질 수 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 친구들 따라 끊은 독서실에서 나는 뱀에게 꼬드김 당한 이브처럼 이 금기를 어기고 말았다. 다들 밤을 새울 거면 이게 꼭 있어야 한다며 자판기 속 500원짜리 이름도 얄궂은 레쓰비를 추천했다. 그 효과는 대단했다. 12시만 넘으면 반수명 상태로 병든 닭처럼 책상을 쪼던 것과 달리 캔커피를 마시니 브레이크 없는 경주차가 된 기분이었다. 새벽을 거뜬히 넘기고 다음 날 낮까지 정신이 멀쩡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자고 싶어도 잠이 안 오는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나의 공식적인 첫 커피는 잠 안 오는 약으로서 나에게 커다란 효용가치가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커피는 공부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수프는 샐러드로 바꿔주시고요, 치킨 텐더 두 조각 추가해 주세요. 부시맨 브레드 소스는 망고 버터랑 라즈베리 시럽, 초코 시럽 모두 주세요."를 달달 외우고 아웃백 런치를 시켜야 하듯이


"카라멜 마끼야또 아이스로 톨 사이즈 하나 주세요. 바닐라 시럽 조금만 더 추가해 주시고요."


이 마법 주문 같은 말을 외우고 또 외워 점원 앞으로 갔다. 그러나 현실은


"그.. 그 저기.. 카라멜 마..또야끼? 그거 주세요."

"사이즈는 뭘로 드릴까요?"

"저.. 저 그 중간 사이즈 뭐지? 그거 주세요."

"음료는 아이스로 드릴까요?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

"차가운 걸로요."


하고 나오며 쪽팔림에 얼굴이 벌게져 뒤늦게

'카라멜 마!끼!야!또!라고! 멍청아.' 하며 중얼거렸다.


'카라멜 마또야키' 아니, '마또키또' 아니, 뭐 암튼 그걸로 입문하여, '카페 모카 휘핑 많이'를 거쳐, '카페 라테 시럽 많이'를 지나 '카페 라테 시럽 없이'를 먹을 수 있게 되니 자연스럽게 아메리카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끼리 모여 카페에 간 날, 모두 달다구리 커피를 시킬 때 홀로

"난 아메리카노."

를 시크하게 외치는 친구를 보고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진정한 어른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오기로 도전한 아메리카노의 맛은 탄 숭늉 같기도 하고, 커피 씻은 물 같기도 하여 도대체 이걸 왜 돈 주고 시켜 먹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뒤 나도 모르게 그때의 아메리카노 향이 자꾸 생각나 한번 더 도전해 보았고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제대로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진정한 으른'이 되었다.


임산부에게 커피는 맥주와 더불어 애절한 이름이다. 임신 초기 때는 잘 참았는데 중기를 넘어서니 슬슬 먹어도 되지 않을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커피를 참으며 스트레스받을 거면 그냥 마시는 게 낫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옳다구나 하고 하루에 한 잔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복병은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아이만 낳으면 다 먹어도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이 모유 수유 때문에 커피 못 마셔, 매운 것 못 먹어, 술 못 마셔, 생활에 제약이 더 많았다. 여름에 아이를 낳은 나는 지나가다 누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먹는 것만 보면 눈이 돌아갔다. 한 모금만 먹게 해달라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유 수유의 시기가 지나자 아줌마의 일상에서 커피는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겨우 아메리카노 마시는 현대 여성이 되었는데 다시 달다구리 입맛으로 돌아갔다. 믹스 커피야 말로 진정한 커피임을 이때 알게 되었다. 육아에서 커피는 휴식이자 약이었다. 몸은 분명 엄청 힘든데 지루하기 짝이 없는 육아에서 커피 타임은 그나마 정신줄 안 놓게 해 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분유 포트에 물 팔팔 끓여 믹스 커피 한 봉지 넣고 조금 적다 싶게 물을 넣어 티스푼으로 휙휙 젓는다. 고상하게 새끼손가락 하나 들고 마시고 싶지만 현실은 야금야금 마시다가 아이 챙겨 주고 오면 차갑게 식어 있는 커피를 원샷하기의 반복이었다. 안 그래도 믹스 커피를 진하게 먹는 편이라 물도 많이 안 넣어 두 모금이면 끝나는 커피 타임이 너무나 아쉬웠다. 어느 날 에라이, 모르겠다며 두 봉을 때려 넣었다. 한 봉지 먹을 때 보다 건강엔 안 좋겠지만 커피라도 내 맘대로 먹어야 살 것 같았다. 물론 식어빠진 커피는 두 배가 되었지만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위로이던 그때, 조금이라도 더 남아 있던 커피가 반가웠다.


나의 커피 역사를 쭉 살펴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스트레스받고 몸이 힘들수록 달달한 커피를 찾았고, 인생 살만하다 느끼는 시기에는 아메리카노 같은 쓴 커피를 마셨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받을 땐 단 게 땡긴다는 말이 이럴 때 보면 맞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커피를 달게 먹었던 시기는 임용 공부를 할 때였다. 꼴에 고시생이라고 노량진에서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시절 날 살려준 커피는 카페 모카였다. 가난한 고시생들이 넘쳐나는 노량진은 노량진만의 물가가 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천원이 흔했던 그곳에서 나는 무려 1,500원이나 하는 카페모카를 금요일이 되면 먹었다. 그리고 주문하면서

"휘핑크림 많이요~"

를 빼놓지 않고 외쳤다. 단골 카페 사장님은 웃으며

“얼마나 많이요?”라고 물었고 나는 거기에

"이렇게 먹어도 안 죽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요."

라고 대답했다.


이쯤 되면 나에게 '요즘은 무슨 커피 마셔요?'라고 물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요즘 나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신다. 분유 포트 아니고 선물 받은 새끈한 드롱기 커피 포트에 보글보글 물 끓여 주둥이가 뱀같이 긴 드립 포트에 옮겨 닮고 케냐 AA인지 ABC인지 잘은 모르지만 암튼 향 좋은 원두 가루를 필터 받힌 드리퍼에 붓는다. 어느 날은 안에서 밖으로, 또 어느 날은 밖에서 안으로 내 마음대로 물을 붓고는 토도독 떨어지는 커피 방울들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는다. 신생아를 키우는 어머님들, 혹시 부러우신가? 살만하다고 자랑하나 싶어 배가 살짝들 아프신가? 걱정하지 마시라. 오후 되면 여전히 믹스 두 봉지 뜯고 있으니까.


이제는 밤 12시에 커피를 마셔도 잠만 쿨쿨 잘 잔다. 커피가 잠을 깨는 데 효용 가치가 있다면 나에게는 필요 없게 된지 오래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커피를 마신다. 커피는 이제 인생을 함께 하는 동반자같은 존재이다. 고된 육아를 버티게 해 준 육아 동지이자, 공부하던 시기에는 약이기도 했다가, 반가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빠질 수 없는 대화 매개체.


12시이다. 밥 먹고 얼른 믹스 커피 두 봉 해야겠다.

나름 철저한 PPL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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