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되면 생기는 신기한 능력

by 또랭

아줌마가 되면서 신기한 능력 하나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남편과 아이가 "그거 어딨어?"라고만 물어도 3초 만에 '어느 방 어느 서랍 안 왼쪽 구석탱이'와 같이 구체적으로 대답해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자매품으로는 가족들이 "찾아봐도 없는데?"라고 말할 때 내가 가서 찾으면 그 물건이 나타나는 능력이 있다. 우리 엄마만 있는 줄 알았던 그 능력이 결혼하고 아줌마가 되니 나에게도 생긴 것이다. 아이 코딱지만 한 장난감 하나, 남편이 어디 오래전에 쓰고 처박아 둔 물건까지 나는 우리 집 안에 모든 물건을 찾을 수 있다. 외출 또는 여행 시에도 이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캐리어 안 구석구석, 크고 작은 파우치들 안까지 나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두 파악하고 있으며 그 실종 여부도 재빨리 알 수 있다. 원하는 것을 말하면 그 물건을 막힘없이 척척 꺼내어 준다고 하여 우리 가족은 나를 도라에몽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나도 우리 엄마에겐 늘 자기 물건 못 챙기는 '덜렁이'였다. 우리 초등학교 때만 해도 급식 대신 매일 각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야 했는데(구한 말, 또는 전쟁 세대 아님) 내가 매일 찬 도시락을 먹는 것이 안타까웠던지 어느 날 엄마가 백화점에서 빨간 보온 도시락 통을 사 오셨다. 엄마는 이게 무슨 일본 코끼리표 도시락 통인데 보온도 잘 되고 되게 비싼 거라며 큰 맘먹고 사온 거니 잃어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러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나는 정확히 이틀 만에 그 도시락을 잃어버리고 왔다. 사실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신나게 TV를 보고 있었는데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설거지하게 도시락 통 내놓으란 얘기에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머릿속에 교실에서 도시락 통을 가지고 나와 신발을 갈아 신는다고 옆에 놔두고는 신발주머니만 달랑달랑 들고 오는 나의 모습이 필름처럼 재생됐다. 된통 혼난 뒤 울면서 신발 갈아 신던 곳도 찾아가 보고 다음 날 분실물 모아 놓는 곳도 가 보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나의 빨간 도시락통은 찾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이 이야기는 나의 대표적인 덜렁이 에피소드가 되어 놀이공원 가서 핸드폰 잃어버리고 온 날,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오락하다 지갑 놔두고 온 날, 수 십 개의 우산과 목도리를 잃어버리고 온 날마다 엄마의 입에서 끊임없이 회자되었다.


이런 내가 물건을 잘 챙기는 사람이 된 건 사실 남편의 덕이 크다. '덕'이라고 해야 할지 '탓'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편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가장 강력한 덜렁이였다. 연애 초반, 남편은 가방을 비롯해 내가 무거운 짐을 들고 있으면 뺏다시피 하여 자기가 모두 짊어졌다. 짐을 들어주는 게 나에겐 익숙한 매너가 아녔기에 내 껀 내가 들겠다고 다시 가져가려고 하면 실랑이만 한참 하다 결국 남편이 모두 가져갔다. 남편에게는 이게 중요한 매너였나 보다. 여기까진 좋다. 참 아름답다. 그런데 문제는 조금 다니다 보면 남편 어깨에 있어야 할 내 짐이 안 보였다는 것이다. 당황하며 "내 가방 어디 갔어?"라고 말하면 나보다 더 당황하며 "어디 갔지? 분명 아까까지 있었는데?"라고 나에게 되물었다. 하아... 그렇게 연애 내내 짐 잃어버리고 찾기는 반복되었다. 음식점에 수시로 놔두고 오는 핸드폰은 귀여운 정도였고, 숙소에 캐리어 두고 몸만 달랑 가기, 신혼 여행지에서 카메라 잃어버리고 오기 등 덜렁이 둘이 만나니 물건이 남아나지 않았다.


결국 조금이라도 덜 덜렁거리는 내가 조금 더 꼼꼼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는 그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 짐이 자잘 자잘하게 많기도 했지만 우는 아이를 달래고 먹이면서 물건 챙길 정신까지는 없었다. 공항에서 아기띠 놓고 비행기 타기, 쪽쪽이가 없어져 여행지에서 관광이고 나발이고 쪽쪽이 파는 곳 찾으러 다니기, 아기 띠를 하고 가다가 언제 벗겨졌는지 아이 한쪽 신발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는 것도 여러 번. 끊임없이 잃어버리고 찾기를 반복하며 나는 물건 챙기기의 고수가 되어 갔다. 그리고 절대 고칠 수 없을 것 같던 남편이 덜렁이 증세도 나의 혹독한 훈련으로 함께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주차한 곳도 세 번의 한 번 정도는 기억하며 자동차 문 잠그기도 두 번에 한 번 꼴로 하고 있으니 나는 더 소원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친정에 가면 이런 능력은 모두 사라진다. 여전히 나는 엄마에게 "엄마, 그거 어딨어?"라고 묻고 엄마는 내가 '그거'가 무엇인지 말도 안 했는데 "안방 두 번째 서랍 뒤져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또 집에서는 분명히 잘 실행되던 두 번째 능력마저 잃은 채 "엄마!! 없어!!"를 외친다. 엄마 역시 다음 레퍼토리인 "너, 엄마가 찾아서 나오면 어쩔래."를 시전하고 보란 듯이 물건을 찾아낸 후 등짝 스매싱을 날린다. 참 이상하다. 이곳은 나의 능력이 먹히지 않는 무력화 지역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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