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이 아니고 진짜라니까요.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매일 헬스를 두 시간씩 하는 것 마냥 지치고 힘든데 하루가 다르게 최고 몸무게를 갱신하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단, 마른 것들은 예외다. 그들은 다른 종족이다.) 웬만한 남자 아령 무게는 될 법한 아이를 하루에도 수십 번 안아 주니 팔뚝이야 벌크업 된다 치자, 아니 그러면 안 쓰는 다른 곳들은 양심상 가만히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같이 부풀어 올라 사람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는가. 그러나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분석해 본 결과 이 기이한 현상에 조금이라도 실마리가 될 근거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함께 살펴보자.
아줌마들이 서러울 때를 꼽으라면 바로 밥 먹을 때가 아닐까. 신생아 키우는 시절 식탁도 아닌 싱크대에 대충 밥그릇과 반찬통 펼쳐 놓고 눈은 아이에게, 밥 숟가락은 코로 들어가도 전혀 어색함을 모를 만큼 정신없이 밥 먹어본 경험은 아줌마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물론 한 손에는 아이가 들려 있을 확률이 높다. 아이가 울까 봐 위아래로 바운스를 타며 박자 맞춰 먹다가 으앙 운다 싶으면 물이나 국에 말아 후루룩 마셔버리거나 애 좀 달래고 돌아와 차갑게 식어있는 밥을 꾸역꾸역 먹는 일도 많을 것이다. 사람답게 먹어보겠다고 아이 낮잠 시간까지 기다려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쫄쫄 굶었으니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급하게 먹다 사레라도 들려 켁켁거리며 눈물이라도 찔끔 나면 그게 그렇게나 서러울 수가 없다. 빨리 먹으면 포만감이 어쩌고, 위염이 어쩌고 하는 소리쯤은 나도 물론 알고 있다. 자고로 어렸을 때부터 한 입 먹고 20번씩 씹으라는 잔소리는 모두들 들어보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20번씩 꼭꼭 씹어 밥 한 입, 반찬 한 입 먹을 정신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손뼉 쳐 드리자. 엄청난 집중력으로 뭘 해도 해낼 사람이다. 그러나 평범한 아줌마에겐 천천히 밥 먹기란 친정 엄마 앞에서만 가능하다.
아니 왜 세상 맛있는 것들은 꼭 밀가루가 들어가 있을까. 앞에서 소개한 빨리 먹기 좋은 음식으로도 이 밀가루만 한 게 없다. 빵, 국수, 라면 등 이름만 들어도 맛있는 것들이다. 외국인들은 주식이 빵이라는데 한 끼 정도 빵으로 먹는다고 무슨 일이 날까 싶어 집에 쌓아 놓은 빵이 한가득이다. 요즘은 또 에어프라이어니, 죽은 빵도 살려내는 오븐이니 빵을 맛있게 먹으라고 온 세상이 도와준다. 그리고 집에 찾아와 주는 사람들마다 다들 짠 듯이 빵을 가져다 주니, 귀한 음식 버릴 수도 없고 먹어줘야 인지상정 아닌가. 라면은 또 어떠한가. 얼큰한 것 당길 때 가장 빨리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라면이야말로 주부들의 요긴한 친구이다. 특히나 짜장라면은 아이도 좋아해 밥 하기 싫은 날 슬쩍 건네주면 내가 한 밥보다 훨씬 잘 먹어 살짝 빈정이 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국수는 솔직히 인정해 주자. 국수 삶고 육수도 내고 야채도 썰어 넣었으니 이 정도면 집밥으로 쳐 줘야 한다. 같은 밀가루로 묶어 안 좋은 음식 취급하면 국수가 섭섭해한다. 밀가루는 다이어트에 큰 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적마저 사랑으로 감싸는 넓은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에 이들을 버릴 수 없다.
애스타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해시태그가 있다면 바로 #육퇴 일 것이다. 육아 퇴근을 뜻하는 이 단어야 말로 모든 엄마들이 간절히 바라는 시간이다. 물론 2~3시간에 한 번씩 깨는 신생아를 둔 엄마라면 이것 역시 사치스러운 이야기이겠지만 조금만 기다리시라. 통잠자는 날은 반드시 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야식의 길로 인도되리라.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치느님을 영접하고 있으면 그동안의 고된 육아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사라지며 죽지 않고 살아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이 야식타임의 긍정적 영향이 또 하나 있으니, 그동안 못한 부부간의 대화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구가 달리 식구인가. 뭘 같이 먹어야 식구 아니던가. 그동안 못했던 회사 얘기, 아이 얘기 도란도란하며 술잔을 기울이면 전쟁터 같은 육아를 함께 이겨낼 사람은 결국 남편밖에 없구나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야식 타임이 단 하나, 나의 뱃살만은 책임져 주지 못하는 것이다. 유일한 단점인데 엄청나게 치명적이랄까. 그런데 장점이 엄청 많잖아. 한 가지 단점 정도는 눈 감아줘야 사람이 인간미가 있지.
어떤 연예인이 출산 후 완벽한 몸매를 유지한 비결로 이유식을 꼽았다. 아이 이유식 하는 기간 동안 자신도 같이 이유식으로만 밥을 먹었다는 것이다. 몸에 좋은 야채, 고기를 다져 넣었다는 점에서 영양 면에서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간을 안 한 이유식을 아이가 먹은 만큼만 먹으니 절로 살이 빠졌다는 것이다. 신뢰감이 팍팍 간다. 그런데 나도 이유식이라면 많이 먹어봤다. 물론 내 밥 다 먹고 이유식도 먹은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아니 아가씨 때는 비싼 레스토랑 가서도 난 원래 이것밖에 못 먹는다고 스테이크도 반만 먹고 냅킨으로 입 닦으며 입 짧은 척도 잘했는데 왜 아줌마가 되고 나니 애가 남긴 음식을 내 입에다 쓸어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유식 만들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내 살다 살다 애 이유식 만들어 준다고 파뿌리 흙 한 올 한 올 털어가며 각종 야채 고기랑 넣고 몇 시간씩 육수를 끓이는 짓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설거지도 안 하던 내가 이러고 있는 거 보면 우리 엄마 기절초풍 하시겠지. 이렇게 몇 시간씩 육수 내서 생전 내 손으로 사 본 적 없는 비트니, 아스파라거스니를 썰어 정성들여 만들었는데 애가 한 입 먹고 못 먹을 음식 먹은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면 애의 영양이니 뭐니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데!!!' 하며 부들부들 떨게 되어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먹어야지 뭐 별 수 있나. 결국 밥 먹고 간식으로 이유식 먹으니 아이 대신 내 얼굴이 날로 통통해질 수밖에. 그러나 나날이 심각해지는 환경오염과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주부로서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지 않은가. 이건 모두 지구를 위해서다. 이렇게 큰 뜻이 있는데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자, 지금까지 내가 살이 찔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이유들을 살펴보았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 모두 느끼겠지만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아주 중요한 이유들이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 적마저 사랑하는 넓은 마음 때문에, 원활한 부부 생활을 위하여, 지구를 위하여 모두 저버릴 수 없는 이유들 아니겠는가. 살을 뺄래야 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이 정도면 희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난 정말 그런 것 같은데. 하지만 아직 절망하긴 이르다.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다음 편에서 이 해결 방법에 대해 알아보며 안 해 본 것 없는 아줌마의 다이어트 방법들에 대해 소개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