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를 소비할 것인가? vs 콘텐츠를 생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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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나는 스마트폰을 쓰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스마트폰을 통해 삶이 얼마나 편해질 수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내가 80년대생인 이유도 클 것이다. '늙은'이 붙긴 하지만 나 역시 밀레니얼 세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벽돌 같던 첫 핸드폰의 탄생도 지켜봤고, 연결될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나던 집 전화와 연결된 인터넷 모뎀 시절도 겪어왔다. 인터넷과 모바일은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부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책 <90년생이 온다>에서 말한 것과 같이 '기성세대의 어려운 시절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전통적인 사고와 개방적인 사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 역시 맞는 말이다. 나는 죽어도 꼰대가 아니라고 우기지만 90년대생에 비하면 나 역시 꼰대가 맞나 보다.
이것을 꼰대 기질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아직도 스마트폰의 부정적 기능이 있다고 믿는다. 의도하지 않은 시간을 잡아먹고, 하려던 것들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기성세대와 좀 다르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나는 '콘텐츠의 힘'은 믿는다는 것이다. 게임이나 유튜브 방송이 다 쓸데없고 바보로 만드는 것들이라는 생각 하지는 않는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콘텐츠가 바로 돈이고, 힘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 많은 유튜버, 운동선수보다 몸값 높은 프로게이머들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나는 그 콘텐츠를 소비만 하는 삶이 싫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유튜브를 보며 밤을 새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쇼핑몰에서 내 돈을 다 쓰고 있는 나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나도 그들처럼 나의 콘텐츠를 만들고 돈을 벌 수 있을지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책 <포노 사피엔스>에 보면 인류의 삶을 바꾼 4대 기업 이야기가 나온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이 그것들이다. 그래도 삽화에서는 '삼성'까지 넣어주어 '5대 기업'을 완성시킨다. 이 기업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인류의 삶을 바꿔 놓은 기업들이다. 이 기업의 주 고객층은 이 책에서 말하는 '포노 사피엔스'(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 '포노 사피엔스'들이 어떤 기업을 선택하느냐보다 이 '포노 사피엔스'들을 움직이는 기업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콘텐츠를 만들었느냐에 더 관심이 많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단한 창조물들을 만들어낸 기업의 수장들 역시 스마트폰 중독자들일까?
스티브 잡스의 전기 <스티브 잡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잡스는 매일 저녁 부엌에 있는 긴 식탁에 아이들과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면서 책과 역사를 토론하는 등 다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자리에서 아무도 아이패드나 컴퓨터를 꺼내지 않았고, 잡스의 아이들은 디지털 기기에 중독되지 않았습니다.”
애플의 CEO 팀 쿡 역시 “내 조카는 SNS를 못 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어떨까?
“자녀가 14세가 될 때까지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식탁에서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다.”
이 정도 되면 살짝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정작 자신의 자녀들은 스마트폰에 중독되지 않게 그렇게 애쓰면서 당신들 때문에 세계 곳곳의 밥상머리에서 부모 자식 간의 싸움이 얼마나 일어나는지 알고는 있는가 묻고 싶어 진다.
그러나 배신자들은 또 있다.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는 11살짜리 아들에게 휴대전화를 사주지 않고 있으며, TV를 보는 시간도 제한하고 있었고,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숀 파커’는 한 학술회에서 페이스북 임원들은 페이스북을 거의 안 한다고 밝혔다.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는 대단한 독서가로 알려져 있어 스마트폰 중독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밖에도 워런 버핏은 아직도 2만 원짜리 구형 폴더폰을 쓰고 있으며, 유튜브 CEO 수잔 워치 츠키마저 한 인터뷰에서 아이들에게 유튜브 키즈 이용만 허락하고 있고, 이용 시간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떠한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는가? 이쯤 되면 IT 최전방에 있는 그들도 스마트폰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자녀의 교육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법보다 돈이 되는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방법을 물려주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저녁 식사 시간의 대화,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들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들처럼 세상을 바꿀 엄청난 일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글을 쓰든, 운동을 하든, 새로운 생각을 하든 나의 콘텐츠를 만들려면 다른 이들의 결과물이 하루 종일 나를 유혹하는 스마트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콘텐츠를 만들려면 다른 사람의 콘텐츠를 많이 봐야 한다. 언제나 창조의 시작은 모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많이 봤다. 충분히 많이 그들의 콘텐츠를 소비하였다. 이제 나는 나의 것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글이었다. 나는 '나의 폴더폰 사용기'라는 콘텐츠를 글로 생산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