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이 될 수 있는 쉬운 방법

by 또랭

한 때 '관종'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관심 종자'란 말의 줄임말로서 어떻게든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받고 싶어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조롱하는 느낌의 단어였지만 요즘은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요즘 같은 개인 유튜버들의 전성시대에서는 관심받는 일은 곧 인기이고, 돈이다. 나 역시 혼자 조용히 써도 되는 이런 글들을 브런치에 올리고 한 명이라도 더 봐주길 바라고 있는 거 보면 관종의 피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관종' 소리를 듣는 아주 쉬운 방법 하나를 더 알고 있다. 바로 폴더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 된다.


관종 하면 이 분을 빼놓을 수 없지.


폴더폰을 주문하기 전까지 가장 고민했던 문제 역시 이것이었다. 이 시대에 굳이 폴더폰을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한 마디씩 들을 필요가 있을까? 평화로움을 겪어보려다가 오히려 피곤해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는 게 정답이다. 나는 일단 지르고 보기로 했다. 자주 보는 가족들에게만 사정을 이야기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애매모호한 카톡 상태 메시지 '카톡 연락 잘 안 됩니다. 문자나 전화 주세요'로 일단 퉁쳤다. 심상치 않은 메시지를 보고 전화를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러쿵저러쿵 사정을 이야기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나와 아이의 스마트폰 중독 문제를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였다. 처음에는 집에서 생활할 때처럼 폴더폰만 달랑 들고나갔다. 역시나 한 마디씩 듣는 게 귀찮아 웬만해서는 폴더폰을 가방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결혼을 한다면서 모바일 청첩장을 그 자리에서 보내줬는데 바로 확인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 생겼다. 어찌어찌 상황을 이야기하고 집에 와서 골똘히 생각해 보니, 생각보다 오프라인 만남에서 스마트폰을 써야 할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 어디쯤 왔는지 확인할 때도 단체 톡방에 묻는다. 함께 찍은 사진을 공유해 줄 때, 맛집이나 여행지를 골라보자며 단체 톡방에 올려주고 고르는 경우, 설명하기 힘든 약속 장소를 지도 앱으로 공유해 주는 경우도 모두 스마트폰이 있어야 한다. 이럴 때마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나는 따로 좀 문자로 보내줄래?' 또는 '나는 나중에 확인할게.'라고 말하는 게 맞을까? 디지털 디톡스니, 습관이니도 중요하지만 이것 역시 내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잘 지내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닌가. 나의 도전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뒤부터 지인들과의 만남이 있을 땐 스마트폰도 함께 가지고 가기로 했다. 물론 꺼낼 일이 없을 땐 꺼놓은 채 가방에 넣어두면 그만이었다. 다행히 IT 강국에 살고 있어서인지 깡통 스마트폰만 들고 다녀도 와이파이 잡히는 곳에서 충분히 대부분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아직까진 지인들 사이에선 관종 얘기가 나오지 않는 걸 보니 나의 일반인 코스프레가 잘 먹히는 듯하다.



그러나 사실 폴더폰으로 관종이 되기 딱 좋은 장소는 마트나, 카페 같이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할 때이다. 일단 폴더를 여는 순간부터 주변의 시선들이 다닥다닥 붙는 게 느껴진다. 전화라도 하려고 하면 안 보는 것 같으면서 흘끗흘끗 보는 시선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소리 죽여 이야기하게 된다. 문자 할 땐 또 어떤가. 그놈의 따닥따닥 소리가 안 보고 있던 사람들마저 불러 모은다. 그 옛날 독서실에서 소리 죽여 키패드 한 개 누르고 3초 쉬던 추억이 나도 모르게 소환된다. 그러나 창피하다는 말보다 더 적합한 '쪽팔린다'라는 느낌도 한 달 정도 되니 제법 익숙해졌다. 나는 이제 별로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다. 잠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다시 자기 할 일로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눈빛이 추억과 호기심 어린 눈빛들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혐오에 찬 눈빛들이었으면 이렇게 적응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 달 정도 되니 스스로 이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졌다. 다른 불편한 점들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고, 편안하다. 이 정도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받쳐 거리의 관종이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폴더폰 사용자의 가장 큰 장애물은 사람들의 시선이다. 나는 가끔 검색창에 '폴더폰 쓰는 사람' 또는 '2G 폰 쓰는 사람'을 검색해 본다. '지질해 보인다.'부터, '조선시대 사람이냐'라는 말도 가끔 보인다, 폴더폰 쓰는 남자를 여자들이 싫어하는가를 묻는 글도 보인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모두가 가는 길을 거꾸로 걷는다는 건 확실히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도전을 하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해보지 않으면 몰랐을 거다. 스마트폰 뒤에 어떤 세상을 내가 놓치며 살고 있는지. 내게 주어진 시간들이 이렇게나 많았는지. 그래서 이 관심이 기분 나쁘지 않다. 유난스럽다는 사람들의 시선도 웃으며 넘길 수 있다. 중요한 건 남들의 시선이 아니고 내 삶의 방향이기에 나는 이 도전을 계속할 생각이다. 혹시나 지나가다 하얀 폴더폰을 들고 있는 아줌마가 있다면 슬쩍 물어보라. '혹시 브런치에 글 쓰세요?' 그게 내가 맞다면 관종이 된 기념으로 커피 한 잔 거하게 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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