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헛것이 들려.

by 또랭

폴더폰으로 바꾸고 나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자꾸 '헛것'이 들렸다는 것이다. 분명 스마트폰은 꺼서 방구석에 처박아 놨는데 어디선가 자꾸 진동 소리가 들린다. 설거지하다가 틀어 놓은 물을 끄고 가만히 귀 기울이고, 아이 방에서 인형 놀이하다가 거실로 뛰쳐나오길 여러 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분명 들었는데. 스마트폰 금단 현상으로 점점 내가 미쳐가나? 남편과 함께 주말을 보내던 어느 날 또 한 번 '지잉'소리가 들렸다.


"여보!!! 나 방금 또 진동소리 들었어!! 나 진짜 미치겠다니까. 헛것이 들려!!"


남편이 말했다.


"내 핸드폰 진동 소리야."


output_3279974868.jpg 아 그래?


자꾸 진동 소리가 들린 것은 스스로 진동이 울릴 때가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쯤 카톡 하나가 올 때가 됐는데, 브런치에서 누가 하트라도 하나 눌러주지 않았을까? 스팸 문자라도 하나 올 것 같은데 하는 막연한 기대가 나의 귀를 혼란스럽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소리가 울리지 않으니 나는 자꾸 불안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집안을 어슬렁거리며 스마트폰 대신 폴더폰 주위를 돌고 또 돌았다. 그래도 약속해 놓은 건 있으니까 스마트폰을 켜지는 못하고 노트북에 깔아 둔 pc 카톡을 수시로 켜서 확인하며 내가 놓친 연락들은 없나 확인했다. 그러나 지금 확인 안 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카톡은 많지 않았다. 그랬으면 전화가 왔을 것이다. 대부분 하루에 한 번 정도 확인해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이야기이거나, 단체 채팅창에서의 수다일 경우가 많았다. 나는 수시로 들어가던 PC 카톡 접속도 그만두기로 했다. 하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결과가 별로 없었다.


안절부절.jpg 안절부절, 불안 초조했던 나날들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이 헛 진동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예전 같으면 설거지하다가도 한 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방을 옮겨 다닐 때마다 스마트폰부터 챙겨 다니며 수시로 쳐다봤는데 어차피 새로운 연락 올 게 별로 없다는 걸 아니까 굳이 폴더폰을 챙겨 다니지 않았다. 책을 읽는 시간도 늘어났다. 예전에는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게 있거나 갑자기 뭔가 할 일이 생각나면 바로 스마트폰을 켜고 찾아보다가 딴 길로 새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온전히 한 시간을 책 읽는데만 썼다. 노트북 켜고 찾기 귀찮으니까 검색 대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굳이 검색을 하지 않아도 문맥상 이런 의미겠구나 때려 맞추며 읽어도 충분히 잘 읽혔다. 흐름이 끊기지 않으니 이해가 더 잘 되었고, 마음에 남는 것도 더 많았다.


진동 소리에서 벗어나니 정체를 알 수 없던 초조함과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건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전부터 이상하게 스마트폰을 켜면 살짝 기분이 업되며 설렘인지 초조함인지 헷갈리는 기분이 느껴졌는데 그 당시에는 이 기분을 의식조차 못했다. 5분 동안에도 수차례 스마트폰을 터치하며 살았으니 그냥 원래 늘 그런 줄 알았다. 땅에서 발이 살짝 떠 있는 상태로 붕붕 떠 다니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스마트폰 사용을 극단적으로 줄이자 이 기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시 땅에 발을 딛고 천천히 걷는 기분이 뭔지 알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이토록 고요하고 차분한 것이란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남들보다 예민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보다 확실히 숨쉬기가 편안해졌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감히 말하는데 마냥 놀던 유치원 때 이후로 처음 겪는 기분이었다.


명상하는 강아지.jpg 이너 피스



혹시 당신도 꿈꿔본 적 있는가? 에메랄드 빛 파도가 부서지고 신나는 음악이 흐르는 어느 휴양지의 한 바닷가. 당신은 선베드에 누워 칵테일을 마시며 온몸으로 여유를 즐기는 중이다. 아, 물론 이런 상상에서 중요한 설정이 있다. 당신을 괴롭히는 상사, 말귀 못 알아먹는 후배, 남편이나 아내, 부모님에게 일절 전화나 카톡 따윈 오지 않는다. 당신은 온전히 당신을 위해 여유를 즐기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어떠한가? 생각만으로 행복해지는가? 아니면 벌써부터 심심하고 외로워 죽을 것 같은가? 행복하다고 대답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에메랄드 파도, 음악, 선베드, 칵테일 딱 그것만 빼고 그 여유로움과 행복감은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지금 당장 스마트폰을 끄고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즐겨라.



그 시작은 불안과 초조함일지언정 그 끝은 거대한 평화로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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