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언텍트

by 또랭

코로나로 연일 '언텍트'란 말이 기사에 오르내렸다. 말 그대로 '비대면'의 시대가 온 것이다. 코로나 덕분인지, 탓인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듣던 '비대면'이란 단어가 이렇게 생활 속으로 훅 들어왔다. 전쟁통에도 천막을 치고 기어이 수업을 하던 우리 민족이 세 달 동안 학교를 안 나가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는 이 풍경은 정말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된다.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남편이 재택근무를 한다고 평일에 집에 있는 모습을 볼 때도 와 여기 미랜가? 난 누구지? 살짝 맛이 갈 뻔했다. 역시 2020년, 원더 키디의 해는 뭐가 달라도 다른가 보다.


선생님을 하는 친구는 '온라인 수업'때문에 돌 지경이라고 했다. 신학기가 되었는데 아이들 얼굴도 모른 채빈 카메라에 대고 혼자 쇼를 하려니 어색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란다. 2시간이면 준비할 수업을 5시간, 6시간 투자해 겨우 찍어 놓고도 자기는 손발이 오글거려 제대로 보지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재택근무라는 걸 처음 해 본 친구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너무 좋았는데 제품을 직접 확인하면 훨씬 빠를 것을 전화통만 붙잡고 이야기하려니 너무 답답하더란다. 그런데 웃긴 거는 또다시 출퇴근 근무를 하게 되니 '굳이 안 나와도 일이 되던데 꼭 출근이란 것을 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상상만 했던 일들이 갑자기 현실로 나타나니 모두들 우왕좌왕 중인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머리 나사 하나가 빠진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제 이 정도면 적응할 만도 한데 길거리에 하나같이 마스크를 끼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불현듯 내가 재난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건가 착각이 든다. '니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뭔데!' 하며 덥석 덥석 떼어가는 세금들에 쌍욕을 퍼붓는 게 익숙한데, '아이고, 힘드시죠?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어머, 애도 있으시네? 더 드릴게요.' 하며 큰돈을 퍼주는 이 상황들이 나는 익숙하지 않다. 그러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처럼 멍 때리고 창밖을 보며 한 번씩 읊조리게 되는 것이다.


와, 이게 현실이라고?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상황을 겪다 보니까 나도 이상한 짓 하나쯤은 해도 될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1년 동안 생각만 하고 실천해 볼 용기는 코딱지만큼도 없었는데, 코로나로 집콕 생활을 한 달쯤 하고 나니 '뭐 어때, 세상도 미쳐가는데, 나도 한 번 또라이짓 해보지 뭐.'하고 말도 안 되는 용기가 샘솟았던 것이다. 그날 폴더폰을 산 건 정말,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그런데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주변 모든 환경이 바뀌니 이상하게 나를 바꾸는 것도 쉬웠다.


책 'HABIT'에 보면 베트남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미군들이 어떻게 1년 만에 마약 중독을 끊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미군은 18세 이상이면 징집 대상이었는데 베트남에서는 이렇게 어린 병사들도 마약을 구하는 게 너무나 쉬웠다. 결국 병사들의 약 15%가 마약 중독자가 되었고, 전쟁이 끝나자 이들은 본국 귀향을 환영받긴커녕 각종 사회 문제를 일으킬 예비 범죄자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들 중 95%는 1년 안에 마약 중독에서 벗어났다. 이 연구 결과는 중독 치료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들이 약물 중독에서 벗어난 이유에 있다. 그들은 치료와 상담도 받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집으로 돌아간 것만으로 약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동료의 시신을 옮기던 환경에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 것만으로 그들은 약물 중독을 끊어낼 힘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나 환경이 중요하다. 낯선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지고, 비 오는 날 소개팅을 하면 성공률이 올라간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나 역시 코로나 사태 초반에는 이게 뭔가 싶고 매일 뉴스나 보며 사람들에게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며 바뀐 환경에 대해 불만만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이런 위기를 누군가는 기회라고 불렀다. 물론 그것이 돈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기회'가 그저 저평가된 주식 쓸어 모으기를 가리키는 말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판이 흔들릴 때 살짝 미친 척하고 내 몸도 흔들어 보면 생각보다 쉽게 나도 바뀐다. 정신없는 틈을 타 이참에 뭔가를 질러보면 절대 못 할 것 같던 일도 의외로 시작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이왕 '언텍트'할 거 제대로 '언텍트'하여 내 안을 살펴보기로 했다. 확진자가 몇 명, 경제 위기, 폭동, 한숨 나오는 이야기들을 거둬내고, 5분에 한 번씩 의미 없이 들여다보는 SNS를 빼고, 현실 도피용으로 보던 단순 재미거리 동영상들을 줄이니 나는 그 속에서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언텍트'의 시대,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되는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다. 정부에서 내놓는 정책들을 보니 '폴더폰'의 'ㅍ'자도 못 꺼낼 시대를 준비하는 것 같다. 진짜로 '혁명'이란 게 일어날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더더욱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신없이 휘몰아칠 앞으로의 시대에서 더욱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며, 그 어떤 최신 기술보다 가장 앞서야 하는 것은 사유이기에. 나는 앞으로 몰아칠 디지털 태풍을 준비하며 여유롭게 차 한잔을 마시고 책 한쪽을 더 읽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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