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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지금이 이기는 순간

#여행 #장염

by 또랑쎄


우리 회사에서는 요즘 사람들이 연달아 장염에 걸리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죽과 약을 먹으며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부는 병원에 다녀오면서도 음식을 조심하지 않고 먹었다. 아픈데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그 사람들은 엄살이 아니냐며 남편과 산책 중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는 문득 과거를 회상하게 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과거에 상사 때문에 힘들어서 퇴사를 결정했던 그 시절에 인생 첫 장염으로 많이 고생했던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매일을 먹으면 토하고 심한 혈변을 보고 점심마다 링거를 맞았었는데, 그때의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크론병까지 의심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런 과거 얘기를 하면서 나는 문득 궁금해서 질문했다.


"그런데 어떻게 또 지금까지 시간이 흘러서 그게 그저 과거가 되어버렸지?"


그 말을 나누는 순간, 밤 산책의 풍경은 참 예뻤다. 건너고 있는 다리 위에 알록달록 핀 꽃들, 노랗고 은은한 조명들, 멀리 보이는 여러 건물들이 내는 불빛들, 다리 위를 건너고 있는 노부부. 이렇게 그저 지금이 온연히 다인 것 같은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때 힘들었던 시간을 이기게 도와준 큰 힘은 그 당시 혼자 홍콩으로 여행을 가서 느꼈던 이런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강가를 혼자 산책하면서 노을을 바라본 그 장면, 호텔에서 불을 끄고 혼자 야경을 구경했던 그 장면이 눈에 선명하다. 더 정확히 기억나는 건 나를 공격하는 자극이 아무것도 없던 그 순간에도 휴가가 끝나고 회사에 가서 퇴사를 처리하고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걱정으로 가득했었는데, 눈앞의 것들이 너무 예쁘고 황홀해서 그 근심을 눌러 이겨버린 그 느낌이었다. 현재 문제가 어떤 것들이 있던 그저 지금이 이기는 그 순간들이 비록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진 못하지만 나약해진 마음을 극복하게 해 주는 큰 힘이 되는 것을 너무 잘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지금도 나는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항상 마지막엔 여행을 좀 다녀오라고 말해준다. 이 와중에 무슨 여행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온연히 나를 위한 휴식의 시간을 보내면서 예쁜 것들을 보고 좋은 시간을 보내면 그게 원동력이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국 그 힘든 일은 과거되어버린다는 나만의 (근거 하나도 없는) 논리를 경험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다.


괴로운 시간들도 그저 과거로 만들어버리고 그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샅샅이 뜯어보면 되게 행복한 일인것 같다.


...


사실 장염 유행부터 시작해서 여행 이야기까지 남편과 소박하게 이야기 나누다 보니 그저 어디든지 여행 가고 싶어서 끄적여 본 글이다.


#여행 #장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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