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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중 그 어떤것도

#관계

by 또랑쎄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이십 대 초반에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 멤버들은 서로 왜 모이고 친해지게 됐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디서 주워서 갖다 모아놨는지 우리 넷은 신기할치만큼 겹치는 구석이라곤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네 명이 싸우고 울고 또 웃으며 어느덧 십여 년째 관계를 유지 중이다.


우리 네 명은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편의상 텔레토비로 이름을 붙이겠다.) 리더처럼 일정을 정리하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 조율해 주는 보라돌이. 힘든 허드렛일에 항상 먼저 손 걷고 나서주며 자신의 '호'를 아끼는 뚜비. 항상 먼저 의견과 자신의 '호'를 거침없이 밝히는 다소 욕심이 좀 있는 나나. '불호'만 아니면 무던히 따라가며 가끔 나나의 욕심을 제지하는 뽀.


이번 여행 또한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나나는 의견을 많이 냈고, 뚜비는 뭐든 먼저 치우고 정리하며 다 좋다고 말하였다. 나나의 의견 중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 뽀는 그 부분은 싫다고 말하고, 보라돌이가 최종적인 정리를 해줬다.


우리 넷은 누가 보면 소위 말해 우정 깊은 관계일 것이다. 나 또한 그들의 십여 년간의 삶을 지켜보고 응원하며 살아온지라 그들에게 애틋함 감정을 가지고 있다. 지인을 소개해 결혼까지 한 사람도 있으니, 말을 안 해도 가족처럼 신뢰되는 면들이 어느 정도 있는 관계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들의 관계가 서로의 손을 잡고 끌어당겨주는 힘으로 외줄 위에서 영영 버티는 중이라는 표현하고 싶다. 미는 힘이 있으면 당기는 힘도 있듯이 우리는 어떤 형용할 수 없는, 그 누구도 더 밀고 더 당기면 틀어질 것 같은 각각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찌 보면 단단하고, 어찌 보면 또 위태위태하다.


이들이 과연 다른 집단이나 단체에 가도 이 네 명에서의 역할을 맡을까. 아닐 것이다. 다른 집단에서는 보라돌이가 나나일 수도, 뚜비가 뽀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일 때 우리인 것이다.


여행 내내 웃을 일로 가득했으나, 분명 순간순간 각자의 밀고 당기는 힘을 조절하느라 애쓰는 부분들이 눈에 보였다. 이 오합지졸들의 절제력과 노력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것을 위해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이 외줄 버티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공항버스 안에서 나는 가챠를 뽑은 후 왁자지껄하게 어떤 것을 뽑았는지 공개하는 동영상을 보며 올라가는 광대를 낮출 수 없다. 일본에 왔으니 가챠를 해야 한다며 돈 십만 원을 다 같이 뽑기에 쓰는 텔레토비들. 서로에게 이득이 딱히 되는 관계도 아니고 피를 나눈 형제들도 아니다. 그저 영상 안 저런 순간들, 추억, 웃음을 위해 우리는 외줄 버티기를 한다.


많은 복합적인 감정과 노력, 위태로움을 감안할 만큼의 무언가를 정의할 수 없는 나는 그저 올라가 있는 나의 입꼬리를 따라 그 무언가를 행복이라 정하기로 하였다. 같이 있는 시간들이 모두 행복한 기억으로 남고, 가끔 힘이 드는 시간들이 추억으로 남았다면, 우리 텔레토비들은 아마 나이가 많이 든 먼 미래까지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외줄 위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있을 것이다. 그게 또 기대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PS. 텔레토비 중 나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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