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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펀치 Apr 05. 2017

푸드파이터 먹방이 불편한 이유

*사진은 '떡 많이 만두 적게' 맞춤 소연 떡국

1인 미디어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궁금증 반, 의무감 반으로 유명 BJ가 진행하는 먹방을 봤다. 날씬하고 잘 생긴 BJ들이 모니터 앞에 음식을 잔뜩 놓고 앉아 음식을 먹었다. 종류는 다양했다. 매운 떡볶이도 먹고 족발, 피자.. 푸드파이터식 먹방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가 조리방법을 보여주고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먹방에는 익숙했지만 그런 식으로 무지막지하게 먹기만 하는 건 처음 봤다. '저렇게 먹어도 괜찮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맛있게 먹고 있었지만 어딘가 벌칙 같기도 했다. 조회수는 높았지만 나는 왠지 즐겁지 않았다. 내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불편할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은 그냥 굳이 찾아보지 않는 것으로 잠시 잊혔다.


불편한 감정의 실체는 시사인 494호의 한 기사를 읽고 밝혀졌다. [밥이 곧 미래다 빼앗긴 청년 식사권]이란 기사였는데, 밥을  굶는 대학생들을 위해 공강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봉사단체 '십시일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학생들은 자투리 시간에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게 번 임금으로 식권을 사서 기부한다. 그렇게 모인 식권은 '3000원 내외의 밥조차 사 먹기 부담스러운 대학생 1900여 명'에게 전달됐다. 기사 말미에는 서울대가 배고픈 학생들을 위해 2015년 6월부터 1000원 식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었다.


같은 기자의 또 다른 기사 [굶고 때우고 견디는 청년 '흙밥' 보고서]에는 '식사할 권리'를 빼앗긴 청년들의 흙밥 이야기도 있었다. 공부하기 위해 빚진 청년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흙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는 현실, 아직 젊고 건강하기에 밥을 가장 후순위에 두게 된다는 이야기. 그랬다. 내가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그거였다. 먹방이 ‘밥’을 소재로 한다는 거였다.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용돈은 30만 원이었다. 큰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또 만만하지가 않았다. 교통비에 하루의 만원 꼴의 용돈을 아껴 친구와 밥을 먹고, 조금씩 모아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학식은 웬만하면 3천 원을 넘겼고, 여기에 학관 아메리카노 한잔만 마셔도 하루에 할당된 돈의 50%를 사용한 꼴이 됐다.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금방 하루 한도를 넘겼다.


막 고등학생이 된 여동생, 운동하겠다는 남동생에, 그때까지만 해도 아장아장 걷던 5살짜리 막내도 있었으니 30만 원도 감지덕지할 때였다. 웬만하면 하루 만원 안쪽으로 버텼다. 밥을 굶고 그 돈을 모아 갖고 싶은 걸 사곤 했다. 체크카드에 잔액이 없어 얼굴이 빨갛게 폭발하는 경험을 한 이후론 과외를 시작했다.


내 시험기간과 아이들 시험기간이 겹칠 때가 가장 버거웠지만 돈의 유혹을 떨치긴 어려웠다. 4개를 한꺼번에 돌렸다.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생기고 직접 돈을 버니 사정은 나아졌다. 죄책감도 줄었다. 외식도 쉽게 하고, 카드도 쉽게 쉽게 긁었다. 그래도 아직 비싼 밥은 내게 사치였다. 물건은 남지만 밥은 사라지니까 밥을 가장 후순위에 뒀다. 비싼 밥을 먹을 때는 여전히 손이 떨렸다.


홍콩에 가기 위한 종잣돈을 모을 때도 많이 굶었다. 당시 오전에는 취업 스터디를 하고, 4시부터 밤 10시까지 중국인들이 득시글한 명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저녁시간은 한 시간이었지만 식사를 제공했던 건 아니고, 1시간치 시급으로 식대를 대신했다. 당시 시급은 6천 원이었으니 다른 곳에 비하면 나라는 인간의 노동력을 꽤나 쳐주는 편이었지만 명동에서 6천 원으로 한 끼 식사를 제대로 해결하긴 어차피 어려웠다. 6천 원이 아깝기도 했다. 음식 가격을 볼 때마다 ‘내가 몇 시간을 일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니 차마 그 돈을 주고 먹기가 아쉬웠다.


궁여지책으로 동생이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가져온 하루 지난 샐러드를 챙기는 것이 버릇이 됐다. 맥도날드에 가서 천 원짜리 따뜻한 커피를 사서 함께 먹었다. 당연히 외부 음식은 반입 금지였겠지마는, 구석에서 이어폰을 끼고 꾸역꾸역 샐러드를 밀어 넣고 있는 나를 점원들이 굳이 제지하지는 않았다. 가끔 샐러드가 물릴 때면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었다. 맥도날드에서 천오백 원인가 하는 불고기 버거를 먹기도 했고 아래층 편의점 직원이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감사하게 때우기도 했다.


한편 후순위였던 밥이 막상 홍콩 생활을 하면서는 도피처가 됐다. 정말 당시 앵겔 지수가 폭발했다. 교사 일에 길거리 아르바이트까지 합쳐서 백만 원 초반의 돈을 벌었는데, 그중 70만 원은 월세로 쓰고 나머지는 거의 음식에 때려부었다. 어렵고 힘든 와중에 내게 그만큼의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건 음식뿐이었다. 힘든 날에는 부러 코즈웨이베이까지 나가서 페퍼런치를 먹었다. 주말엔 맛집을 찾아다녔다. 친구가 깨까지 뿌려 해주는 볶음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극한 상황에 몰리니 밥이 최우선 순위가 됐다.

페퍼런치 사진을 못 찾아서 올려보는 음식 사진. 면접 보고 온 어느 날의 식사였던가.

취업을 하고 가장 처음 밥 걱정으로부터의 해방을 누렸던 때도 기억한다. 퇴근 후 IFC몰에서 인서트를 몇 개 따고 집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왠지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곳에나 들어가 아무렇게나 음식을 시켜 아무렇지 않게 먹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딸기 주스를 생각 없이 골라 생각 없이 계산했다. 통장에는 첫 월급이 들어와 있었다. 영화를 보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그 순간이 그렇게 서럽고 기뻤다. 이제야 나는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게 되었구나. 지갑 걱정 없이 친구들에게 밥 한 끼 사줄 수 있게 됐구나.


나에게 있어 밥은 이런 것이다.


때로 굶어야 했던 것, 뻑하면 내 하루 생활비의 반을 넘겨버리는 것. 돈을 벌어야 얻을 수 있는 것. '몇 끼만 참으면 그거 살 수 있어!'라며 한때 인생에서 마지막 우선순위였던 것. 내 1시간짜리 노동의 대가.

울 엄마가 젤 잘하는 김치국수. 진짜 최고임 엉엉 배고파

나야 집에 가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양껏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세 끼를 챙겨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 버겁곤 했다. 과제를 하면서 대충 입에 욱여넣어야 했던 2500원짜리 김밥, 작은 용돈을 쪼개 수업 전에 누렸던 1500원짜리 아이스커피 호사, 좋아하는 사람과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시간 중 하나. 웃기지만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 때 비싸고 맛있는 걸 먹기 위해 5일을 샐러드로 때우기도 했다. 행복 질량 보존의 법칙!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한 끼 밥을 먹기 위해 오늘도 한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열심히 돈 벌어 밥 먹는 데에는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원치 않게 라면으로 매 끼니를 버텨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물에 카레가루를 풀어 끓여먹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음식은 누군가에게 분명 존엄이고 삶 자체다.


특별하지만 가끔 거르거나 거를 수밖에 없는 것. 맛있고 행복한 것임과 동시에 못 챙겨 먹으면(특히 아플 때) 슬프고 서러운 것. 엄마 아빠는 입버릇처럼 ‘밥 잘 챙겨 먹으라’고 한다. 가끔은 알겠다고 대충 답하며 귀찮아도 하지만, 나도 동생이 아프거나 하면 ‘밥 꼭 챙겨 먹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 밥에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선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그래야 바닥에 내팽개쳐진 내 존엄을 다시 챙길 수 있을 테니까.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테니,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하고 싶은 ‘작은 일’을 하면 된다(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제12화 ‘식빵 맨의 하루’).”


음식은 물론, 충분히 유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밥은 그냥 밥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장으로 밀어 넣거나 해치워버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지난 주말에는 가족들과 세상 맛있는 밥을 새삼 행복하게 먹었다. 광광 배가 고파온다.



[시사인] 굶고 때우고 견디는 청년 '흙밥'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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