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펀치 Feb 11. 2021

살다보면 살아진다

엄마가 보낸 생일 떡

엄마가 회사로 떡을 보냈다.


며칠 전부터 동생을 통해 이것저것 묻길래 의심이 되어 뭔 꿍꿍이냐 물었더니 떡을 보내겠단다. 틈만 나면 네이버에 내 이름을 검색해서 나도 잊고 있었던 내 회사 TMI들을 가족 단톡 방에 띄우더니, 이제는 떡으로 사무실을 침공했다.


그걸 누가 먹냐고, 다들 부담스러워한다고 하지 말라 했더니 동생은 엄마 고집을 꺾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기어코 회사로 10팩 정도 되는 떡을 보냈다. 흔히 답례품으로 많이 하는, 꿀떡과 바람떡 같은 게 들어간 그저 그런 팩이었다.


받은 걸 어쩐다. 주변에 계신 선배들, 팀 분들에게 떡을 돌리고 나도 먹었다. 깨끗이 다 먹고 약밥만 남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약밥을 싫어했는데 엄마는 그것도 까먹었나 싶었다. 엄마는 카드도 보냈다. 봉투를 열어보니 카드에 업체가 프린트한 편지가 적혀 있었다.


살아보면 살아진다. 응원한다 엄마가~


가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싶을 때가 있었다. 사람도 일도 내 마음처럼 될 때보다는 안 될 때가 더 많고, 그럭저럭 열심히는 사는 것 같은데 통 목표가 안 잡히는 시절도 있었다. 가족도 그랬다. 잘 풀리는 것 같다가도 금방 고꾸라지는 게 인생이라고, 산다는 건 경사진 골목을 낡은 리어카 한채 끌고 내려가듯 늘 불안하고 달그닥거린다. 사는 게 어떻게, 끝도 없이 불안하다. 엄마가 설마 거기까지.


얼마 전 스물다섯의 내가 썼던 글을 보고 약간 마음이 아렸다. 조금 더 여유 있게 나보다는 주변을 둘러보며 살자고, 넓고 깊은 마음을 장착하자고, 주어진 상황을 원망하지도 않고 맘껏 사랑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세상모르게 웃고 실컷 슬퍼하며, 있는 힘을 위해 '진짜'로 살자고 썼더라. 고작 6년 전의 나인데 전혀 낯선 사람이라 이상했다. 그때의 내가 참 밝아서 나는 자랐지만, 오히려 후퇴해버린 건가 싶었다.


이제 소울을 보고도 감동 따위 받지 않는 때 탄 어른이 되어버렸고 간혹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힘에 부친다. 가끔 그만 다 포기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는 어렴풋이 행복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 살기도 녹록지 않아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가끔 피곤하고, 자주 지친다.


엄마의 말은 살아보니 살아지더라로 읽혔다. 살다 보면, 어떻게든 살게 되더라로도 보였다.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저렇게 담담히 살아보면 살아진다고 건넬 수 있는 마음은 얼마나 어른일까. 그 마음은 내가 평생 살아도 닿지 못할 그런 깊은 우물 속에 있는 게 아닐까.


떡은 그냥 그랬다. 맛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그저 그런 떡이었다. 하지만 엄마를 생각하며 낯 뜨겁게 "엄마가 우리 딸 잘 부탁드린다고 보내셨어요"라고 팀분들에게 떡을 건넸다. 다들 고맙게 받아주었다.


엄마는 늘 촌스러운데,

나는 그 촌스러움이 싫지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