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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의 생일

2017년 9월 6일의 팝콘

by 강펀치

어제가 미역의 생일이라 축하를 위해 모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준 것도 벌써 10년이 됐다. 내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사랑한다는 건 뭘까?


나는 미역의 세심함과 얌전한 고양이 웃음을 좋아한다. 긴 손가락, 정갈하게 다듬은 손톱과 민망할 때 짓는 인중을 길게 늘이며 입술을 앙다무는 이상한 표정을 사랑한다. 큰 키를 부러워한다. 고2 쉬는 시간마다 내 옆에 와 PMP로 태양 뮤비를 보던 그 모습을 기억한다. (아참 내가 잠깐 빌렸던 PMP를 돌려줬었던가?) 내가 매일 아침 먹던 하루 야채에 대한 농담과 짧게 붕붕 뜨던 뱅 스타일 앞머리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넷이거나 둘이서 찍었던 스티커 사진, 어느 사진에서 미역은 회색 빵떡모자를 썼었던가.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 찌는 듯 먹는 건 귀신같이 좋아하지만 십 년 내내 날씬한 부러운 녀석. 유객주와 가평 MT 영미 오리탕 주루마블 따위의 우리만 아는 주제로 함께 몇 시간을 킬킬댈 수 있다는 것. 서로의 주량이나 이것이 몇 번째 연애인지 따위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단 그 전제가 좋다. 이 상황에서 미역이라면 분명 이렇게 얘기할 거야 라고 이야기할 수 있고, 대명사로 이야기해도 서로라면 금방 알아들을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을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닥터의 타임라인에 들어간 클라라처럼 내 삶의 기억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그 흔적들을 사랑하는 거라고. 시간을 통해서 만들어진 우리만의 언어, 농담, 새로운 이름들. 어쩌면 새로운 나. 그래서 미역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 자체보다는 내 시간 속의 미역을 나 자신을 온통 사랑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섞일 대로 섞여버려 절대 뺄 수 없는 나의 타임라인 속에 들어와 버렸기 때문에, 통째로 사랑하는 수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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