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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펀치 Oct 12. 2017

Yes, You are Heath Ledger

히스 레저, 그의 코어에 대하여

오늘 필라테스 첫 수업을 들었다. 강사 선생님은 몇 번이고 코어를 잡으라고 했다. 누워있을 때 뜬 배를 바닥에 붙이지 않으면 코어가 잡히지 않는데 그렇게 되면 동작의 중심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코어(core), 그 말을 곱씹으며 나는 내가 늘 생각해 왔던 코어를 대하는 나름의 방식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접하면 나는 그것의 코어를 먼저 생각한다. 코어가 있느냐 없느냐는 나의 매우 무척 주관적인 판단 기준에 따르는데, 그것이 영화든 만화든 책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이 코어? 이과 망했으면... (출처 www.nasa.gov)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 같다고 해야 할까 영혼 속에 박힌 돌멩이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한쪽이 좋고 다른 쪽이 나쁜 것이 아니라 분류 지어지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를 보다 보면 하나의 응축된 딱딱한 돌멩이 같은 게 있고 영화의 주제나 분위기, 내용 모두가 그 점을 향해 수렴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게 느껴지면 코어가 있는 것이다. 


코어가 없는 종류의 영화는 그 분위기가 러닝타임 전체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 더 성긴 느낌이 나기도 한다. 


어쨌든 코어가 있는가 없는가. 그 묘하고도 애매한 나만의 기준에 따르면 히스 레저는 온몸이 코어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https://youtu.be/5PPTDsTnaPk

<아이 앰 히스 레저> 트레일러


연기는 삶과 자신을 배우는 행위예요.
온갖 기술을 배워도 삶과 자신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랄까, 금방이라도 반짝이며 어디론가 튕겨나갈 것 같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다. 환하게 웃고 있을 때는 세상의 모든 선한 것을 모아놓은 듯하면서도 연기를 시작하면 금세 고뇌하고 갈등하는 온갖 종류의 인간이 된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원래의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 간극을 버티게 하는 그의 코어가 부러웠다. 인기를 얻어도 그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 진짜인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두려움 없이 추구하는 삶.  

영화 스틸컷

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나 늘 이미지를 깼다. NO라고 외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싶으면 카메라를 들었고 결국 스스로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었던 모든 결정과 선택은 언제나 지금-여기의 나에 의해 이뤄졌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은 순간에 충실한 삶과 합쳐져 불꽃처럼 타올랐다.

영화 스틸컷

17살 막무가내로 집을 떠나 오디션을 보고, 배역을 따내고, 어쩌다 보니 하이틴 스타가 되었다가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이자 귀여운 딸의 아빠가 되었다가, 종국에는 완전히 새로운 조커를 창조했던 남자. 그는 늘 순간을 살았고, 순간이 지닌 가능성을 뒤로 미루지 않았다.


영화 중간중간에는 그가 직접 촬영한 영상들이 삽입되어 있다. 카메라를 보며 바보같은 연기를 하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며 간혹 혼잣말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배우가 아닌, 히스 레저라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영화 스틸컷

한국판 예고편은 '청춘'을 주요 키워드로 사용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청춘보다는 히스 레저라는 한 인간에 대한 헌사다. 너무도 영화 같은 삶을 살아 죽음에 대한 자살 루머가 끊이지 않았던 배우. 자신이 연기한 배역들 만큼이나 입체적인 삶을 살다 간 사람. 


영화 <다크 나이트>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한스 짐머는 히스 레저를 이렇게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놀란이 구상하던 조커 캐릭터, 그 이상으로 조커라는 캐릭터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역할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두려움이나 주저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찍은 모든 장면들은 매우 강렬했고 저희를 압도했죠.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마치 꿰뚫어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영화를 보며 한 번도 스스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의 코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영화 속 히스 레저의 말이 내 안에 와 박혔다. 


Keep it real. 


https://youtu.be/iIluBvQ77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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