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펀치 Oct 29. 2017

형제는 돌아온다

 영화 <부라더>를 보고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로 관람한 뒤 작성했습니다. 


요즘 명절에 일을 도울라치면 엄마와 큰엄마는 '너네도 시집가면 평생 할 일인데 됐다, 둬라' 하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소리를 당연하게 하는 데 입을 삐쭉 하면서도 나도 이제 사람들이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결혼 적령기'에 들어섰는가, 하고 소름이 돋는다. 


한 번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 어른이 되고 어느 순간 돌아보니 엄마와 큰엄마, 외숙모는 결혼이 아니었으면 전혀 관련이 없었을 사람들의 집에 와서 그들의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지금에야 나도 의식적으로 친척 어른들 성함을 대부분 기억하지만은 어렸을 때 나에게 어른들은 대부분 호칭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큰엄마라든가, 외숙모라든가 하는 분들이 더욱 그랬다. 우리 엄마도 외갓집에서 말고는 거의 '제수씨'라든가 '형수님'이라든가 '소연 엄마'로 보통 불렸다. 나도 만약에 결혼이란 걸 하게 되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며느리, 형수, 고모가 되어야 할 거다.


장유정 감독의 <부라더>는 뮤지컬 원작 <형제는 용감했다>를 각색한 영화다. 이 뮤지컬은 장 감독이 직접 글을 쓰고 연출까지 맡았던 작품으로 얼굴도 성격도 정반대인 형제가 아버지 장례를 치르기 위해 3년 만에 안동으로 내려갔다가 일어나는 3일 동안의 일을 그렸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좋은 것들을 독차지했지만 도굴 한탕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학원강사 석봉(마동석 분)과 소심하고 병약한, 하지만 잘 나가는 건설회사에 다니는 동생 주봉(이동휘 분)은 티격태격하며 내려가는 중 '오로라'라는 의문의 여자를 차로 치게 된다. 그때부터 아리땁지만 이상한 오로라 양이 자꾸만 두 사람 눈앞에 나타나는데..

제한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연극을 영화로 각색하다 보니 살짝 과장된 설정과 매끄럽지 않은 연결이 아쉬웠다. 하지만 '안동'이 상징하는 극단적인 가부장 유교 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잃어버린 수많은 여성들의 인생에 대한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데는 오히려 이런 단순한 구성이 더 적당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반전이었다. 이렇게 개개인의 개성과 이름을 뭉개버리는 시스템 아래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피해자가 될 뿐이라고. 모두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그래야 돌아가신 조상께서도 행복해할 거라고. 깨알같이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완곡하게 설득하는 듯한 영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St. Vincent, Masseductio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