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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펀치 Mar 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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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건]을 보고

(스포有)

얼마 전 [무한의 주인] 녹음 때 '불사가 선택으로 주어진다면 당연히 경험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만화 주인공이야 사람을 죽이고 패고 해야 하지만 평범하게 산다면 그런 고통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해볼 만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늙지도 다치지도 않고 영원히 이대로 산다면 얼마나 신날까 떠들었다. 하지만 영화 [로건]을 보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생각 없는 얘기인지 깨달았다. 늘 고독했던, X맨 시리즈의 중심이었던 한 남자의 죽음을 보고 나서야.


불사의 능력과 평범함이 절대 같이 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첫 번째 깨달음이었다. 늙지 않는 외모, 상처 입지도 죽지도 않는 육체. 어떤 종류든, 일반인이 겪지 않을 일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배척당할 것이고 내가 살기 위해 늘 누군가를 해쳐야 하거나, 혹은 평생 해치려는 욕구를 억눌러야만 할 수도 있다. 나는 불사의 몸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불사라는 단어는 애초에 평범과는 가장 먼 지점에 있다.

출처 로건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이것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은, 불사의 몸을 지닌 이들이 평생 겪게 될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죽지 않는 몸이 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몸으로도 그들을 지켜줄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자괴감.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똑같이 흐르지만 나의 시간만 멈춰 있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 한들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없다. 얼마나 사랑했든 얼마나 아꼈든 결국 혼자 남겨지고 만다. 이것은 불사의 삶을 사는 초월자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외로움과 관련이 있다.


[로건]은 그동안 쭉 휴 잭맨이 연기해 온 울버린 팬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작별 인사였다. 강인하고, 다치지 않는 최강의 모습으로 늘 X맨의 중심축을 담당했던 울버린의 마지막 모습으로 가장 어울렸다. 누구보다 울버린이 싸울 때 가장 안심을 했다. 그가 아무리 당해도 다시 일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없는 강철의 심장과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건]을 보다 보면 그렇게 잊게 되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도 싸움꾼이기 이전에 상처받고 외로움을 느끼는 한 인간이었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말이다.


작품 속에서는 세 시간대의 로건이 등장한다. 힘을 조절할 줄 모르고 분노에 가득 차 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클론 X-24. 그리고 점점 치유능력을 상실해 죽음을 향해가는 현재의 로건,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빼닮은 미래 세대로서의 로라. 현재의 로건은 짐승에 가까웠던 과거의 자신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지만 그걸 구해주는 것 역시 자신의 DNA를 지닌 딸 로라다. 로라는 로건과는 다르게 발에서도 클로 하나가 나오는데, 자비에 교수는 이에 대해 "암사자들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뒷발의 발톱이 발달"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울버린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지만, 로라는 사랑하는 친구들을 지켜낼 것임을 암시하는 복선 같은 것일까.

출처 네이버 영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다치게 된다는, 절대 무시하고 넘길 수 없는 그 징크스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로건의 모습에는 인간의 좌절감이 있다. 온 마음을 던졌다 상처받고 빗장을 치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젊은 몸의 자기 자신, X-24와의 싸움에서 로라의 도움으로 이기고난 뒤 로건은 말한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스스로는 경험하지 못했던 죽음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가족이란 것은, 소중한 사람을 지켜낸다는 기분은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로건의 마지막은 정말 뮤턴트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죽음과 더 어울렸다.


로건이 로라의 생물학적 아버지이기는 하지만 그가 로라를 아꼈던 마음이 꼭 부성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직 분노를 세뇌당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선물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와 그의 친구들이 끝내 이루지 못했던 것을, 그들을 꼭 닮은 아이들이 이루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마음은 인간애와 더 닮았다.


로라는 그의 무덤 앞에서 영화 [셰인]의 마지막 장면 대사를 읊는다.

사람은 자기 본성대로 사는 거야, 조이. 어쩔 수 없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더구나.
이유가 뭐든 난 살인을 저질렀어. 그게 옳든 그르든, 살인은 낙인이야, 조이. 돌이킬 수 없지.
가서 엄마께 말씀드리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이제 계곡에 총성은 더 이상 울리지 않을 테니까.

로라의 계곡에도, 우리의 계곡에도 더 이상 총성이 울리지 않기를. 무덤 앞의 십자가를 뽑아 X자로 눕힌다.


XXXXX.

대단한 17년이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울버린, 고마웠습니다. 로건.

 

RIP 자비에... RIP 로건. (오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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