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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펀치 Mar 28. 2017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손석희 현상], 신뢰받는 언론인이란 무엇인가?

고등학교 다니는 3년 내내 구리로 통학을 했다. 시험기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버스를 탔으나 2, 3학년 올라갈수록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주는 횟수가 늘었다. 차에 타면 아빠는 늘 MBC 표준 FM에 주파수를 맞췄다. 논술 준비에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렇게 아침마다 들었던 프로그램이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다. 비몽사몽 눈을 감고 듣는 목소리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침착하고 차분했다. 인터뷰이가 누구든 뾰족하게 질문했다. 날카롭게 벼린 칼 같기도 했다. 어떤 것에도 동요하지 않는 사람일 것 같았다.


2014년 그 목소리가 팽목항에서 울렸다. 온 국민이 밤낮 슬픔에 잠겨있을 때였다. 그가 종편행을 택한 지 1년 즈음 됐을 시기이기도 했다. 팽목항은 슬픔과 가장 가까운 장소였다. 동요하지 않던 사람이 가장 동요하는 공간에서 뉴스를 했다. 간혹 소식을 전하며 울먹였다. 깊은 참사 앞에서 한없이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그 동요는 오히려 마음의 균형을 맞추어주었다. 거짓과 암흑이 판치던 시기였고 바닷물은 찼다. 여전히 날카롭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 그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강준만 교수가 쓴 책 [손석희 현상](부제:신뢰받는 언론인이란 무엇인가?)은 언론인으로서 손석희 앵커가 달려온 과거를 시간순으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나아가 굵직굵직한 사건마다 당시의 여러 학자와 동료들이 했던 비난과 비판, 분석을 적절히 끼워 넣어 사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출처 책읽는사자 포스트

그는 1975년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국민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해 유력 일간지의 총무부 사원으로 입사했다가 1984년 MBC 아나운서가 된다. 전두환 정권이었다. 1992년 MBC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돼 20일간 독방생활을 했다. [100분 토론],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거쳐 2013년 JTBC 보도국 사장으로 간다. 2013년 9월 16일, [뉴스 9] 앵커 자리를 맡았다.


손석희 앵커가 이끄는 JTBC는 변화하는 미래 방송환경에 주목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백화점식 나열 뉴스는 매력적이지 않다. 뉴스를 가장 많이 접하는 플랫폼도 신문이나 뉴스 방송에서 포털 사이트나 페이스북 같은 SNS로 변해가고 있다. JTBC는 포털 사이트 뉴스 생중계, 팟캐스트 등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했다. 클로징 곡을 붙여 앵커가 직접 선곡하는 등 뉴스에 색깔을 입혔다.


리포팅 포맷을 바꾸고 코너도 다양화했다. 앞부분에 묶음식의 기획뉴스들을 배치하고 스트레이트성 뉴스들은 뒤로 놓았다. 기획 뉴스는 리포트뿐만 아니라 인터뷰, 현장 연결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엮었다. 하지만 손석희 앵커 특유의 날카로운 지적, 에둘러 가지 않는 질문은 변하지 않았다. "모든 뉴스를 다 알 필요는 없지만 더 알아야 할 뉴스는 있다" 중요한 부분에 더 힘을 주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힘을 빼는 방식을 택했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보다는 맥락의 중요성을 주장했고, 그게 먹혔다.


JTBC <뉴스룸>은 타 방송사에 비해 기자 개인의 브랜드를 키우는 데도 적극적이다. 과거 '팩트체크'의 김필규 기자를 비롯해 서복현, 심수미 기자 등 여러 기자들은 생방송에서 손석희 앵커가 마주하며 성장한다. 이는 BBC를 비롯한 전통의 공영방송 뉴스가 신뢰도를 높여온 과정과도 유사하다. 예컨대 이 뉴스에서 이 기자가 등장하면, 시청자는 뉴스를 보기 전부터 뉴스를 신뢰하게 되는 식이다.


그리고 JTBC는 2013년 10월 14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입수한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문건 내용을 헤드라인 뉴스로 단독 보도하며 태생적 한계와도 같았던 벽을 넘었다는 평을 듣는다. 2016년 10월 17일부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주도하면서 명실상부 신뢰도 1위 방송사가 된다.


그러나 애초에 손 앵커가 홍석현 회장의 삼고초려 끝에 JTBC의 사장직을 맡게 되었을 때의 분위기는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많은 언론인들이 미디어법 반대를 외치며 투쟁했기 때문에 비판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투사 이미지를 지고 있었던 그에게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이 뒤따랐다. 책에서는 이때 쏟아졌던 비판, 비난의 목소리를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소개하고 있다.


"그는 사회 각층의 다양한 견해를 전달하기는 하지만 그가 특정 현안에 대해 어떤 관점이나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함께 일했던 피디, 출연자 등 제작진이 잘려나가면서도 어떤 항의 없이 묵묵히 출연하고 출연료를 받아갔다."
"1년이 지나면 그는 더 이상 의미 없는 존재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의 상징 가치는 JTBC로 옮기는 순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를 비판하는 데 굳이 1년의 어음을 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늘의 비판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경영전략의 하나일 뿐이다. 1년만 지나면 버려질 것이다."


일본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고까지 지칭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 더 이상 의미 없는 존재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1년 뒤 손석희 사장이 이끄는 JTBC의 보도는 어떤 방송사보다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다. 팩트, 공정, 균형, 품위 네 가지를 지상과제로 택했다.'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 못지않게 그 의제를 지키는 '어젠다 키핑'을 중요시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날 만큼 부담감이 심했다고 말했다. 우호적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비판하던 시기였다. '좋은 저널리즘에 대해서 말하는 건 쉽지만 그걸 행동으로 이만큼 이뤄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손석희: 팩트, 공정, 균형, 품위. 위의 네 가지를 기본 전제로 하고, 시민사회 편에 서겠다. 거기엔 조건이 있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시민사회 편에 서겠다는 것이다. 그게 저의 보도 철학이다. 어떤 정치권력이나 대기업이 아니라 또 극단적인 시민사회가 아니라, 건강하고 합리적인 시민사회 속에 있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에 말씀드린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이건 매우 명확하다. 제가 이걸 지키지 못하면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 무슨 이야기냐면, 그걸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더 미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가 여기에 온 이유다.

장윤선: 시민사회 편에 서서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손석희: 무엇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다. 언론은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을 얻겠다고 하는 순간 오히려 잃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출처 허핑턴포스트 기사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사임하면서 이후 행보와 앞으로 손석희 사장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지금의 JTBC는 손석희가 사라지면 무너질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걱정과 상업주의적인 바탕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맺는말에서 강준만 교수의 글을 가져온다.


"프레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뉴스 가치'의 문제다. 시장에서 어떤 뉴스가 더 잘 팔릴까? 보수 언론도 진보적 뉴스가 잘 팔리는 상황이면 진보적 뉴스를 생산하게 되어 있다. 이게 이념에 앞서는 시장의 철칙이다."


비록 미디어법으로 시작된 종편이지만 JTBC의 사례를 통해 국민들이 좋은 뉴스, 진심을 담은 뉴스를 갈망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런 좋은 뉴스야말로 화제성, 신뢰성을 담보하며, 잘 팔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JTBC가 앞으로도 좋은 보도를 이어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들의 선례는 단순히 좋은 뉴스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사실 자극적이고 연성화된 뉴스가 아니라 건강한 시민사회를 향한 뉴스, 맥락이 살아있는 뉴스, 진실을 추구하는 뉴스였던 것이다.


늘 어려운 선택을 했다. 구치소 생활을 했고 마흔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모두가 말리는 JTBC행을 택했다. 손석희 앵커는 25년 전 공정방송을 위한 50일 파업을 끝낸 뒤 [말]과의 인터뷰에서 '생에서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실체는 분명하지 않더라도 지금껏 제 일생에 지켜온 어떤 일관성이 있다면 그것을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나이가 든다고, 지위가 달라진다고 해서 제 자신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애초에 진실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 다만 그 진실이라는 궁극적인 지점을 향해 끝없이 성찰하고 고민하는 과정 어딘가에 분명히 진실은 있다. 진심, 진실 같은 단어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사회. 편리한 위선, 유창한 거짓말이 판치는 사회에서 그의 일관된 노력은 빛이 난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이것만큼은 믿고 싶다. 그는 진실로 내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http://tv.naver.com/v/1532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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