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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펀치 Jul 04. 2017

데스노트, 몇 가지 단상

-1권부터 12권까지 정주행 한 뒤 든 (잡)생각들

본격 그림보다 글자가 더 많은 만화.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가?’

‘나에게 데스노트가 생긴다면 어떤 이름을 적을까?’

‘라이토와 L의 선악을 구분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만화, 데스노트. 

덕업상권을 위해 1권부터 12권까지 재주행 한 뒤 든 단상들을 몇 가지 (스포로) 정리해 본다.


#1. 라이토는 사신이 되었을지도 몰라 


1권에서 라이토는 데스노트를 줍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신 류크에게 데스노트를 쓴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다. 류크는 이렇게 답한다. “데스노트를 사용한 인간이 천국이나 지옥에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마라.” 


데스노트 세계 속에서 사신계와 인간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신은 인간의 목숨을 받아 자신의 (사신으로서의) 생명을 이어나간다. 결국, 인간의 죽음이 사신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생(生)과 사(死). 세계는 다르지만, 이 둘은 이렇듯 엮여있다. 


데스노트는 나아가 사신도 죽을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 그 규칙은 인간인 미사에게 호의를 보였던 사신 렘의 죽음으로 증명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사신의 죽음이 있다면 당연히 사신의 탄생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신은 어떻게 태어날까? 데스노트는 여기에 대해서 ‘수수께끼’라고 뭉뚱그린 바 있다. 


“사신은 특정 인간에게 호의를 가지고 그 인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데스 노트를 사용해 인간을 죽이면 죽는다” -4권 p.52
“(사신은) 신체적인 특징은 없지만, 암컷과 수컷의 성별은 있다. 하지만 서로 간의 생식 활동은 불가능하며, 즐겨하는 사신도 없다. 어떻게 태어나는지는 수수께끼...” -13권 p.55 

데스노트를 사용한 인간이 죽어서 사신이 될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해 본다. 인간계에서 데스노트를 사용한 자는 결국 인간으로서 사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 된다. 데스노트를 사용하다 죽은 사람들은 결국 인간도 사신도 아닌, 인간과 사신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이 죽은 뒤 각자의 개성을 지닌 사신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 가설이 맞다고 한다면 반대로 사신의 죽음은 새로운 인간의 탄생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인간에게 호의를 갖고 그 사람의 목숨을 늘리는 데 데스노트를 사용하면 사신은 죽는다’는 법칙은 의미심장하다. 사신이라면,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감정, 사신=무감정으로 각각 치환할 수 있다. 


감정은 곧 인간성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사신 렘의 죽음이 그렇다. 렘은 ‘사신답지 않게’ 미사를 측은히 여기고 좋아하게 됐고, 결국 그 인간성, 감정 때문에 죽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 인간의 죽음이 곧 사신의 생명과 연결된다면, 사신의 죽음은 다시 인간의 탄생과 연결될 수 있다.


인간에게 데스노트는 사신으로서의 시험 같은 것일 수도. 자신의 이득 혹은 목표를 위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사신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냥 가설일 뿐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라이토는 아마 훌륭한 사신이 되었을 것 같다.  


#2. 류크 김태호 설

고작 ‘따분하기 때문에’ 이 거대한 살인게임을 벌인 류크가 악역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신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류크는 부지런한 일꾼이자 연출가다. 사실 사신의 역할은 단조롭다. 그들은 인간을 죽임으로써 그 사람의 수명을 받아 살아가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단지 죽지 않기 위해서 인간계를 내려다보고 인간을 죽이는 일뿐이다. 


대부분의 사신은 게으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정도의 살인만을 한다. 죽기 직전에야 ‘어이쿠 큰일 날 뻔했네’ 하며 랜덤으로 눈에 띄는 인간을 죽이는 것이다. 반면 류크는 독특하다. 조금 더 재미있게 일하려 한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조금 더 흥미로운 방향으로,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상황을 바꾸고 연출한다. (마지막에 라이토의 이름을 적은 것은 화룡점정)

출처 http://m.blog.naver.com/babo9880/110141272415

마치 데스노트라는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PD 같다고나 할까. 결국, 라이토와 엘, 혹은 니아와 멜로의 싸움을 연출해낸 것도 류크이며 류크가 없었더라면 이 모든 상황, 데스노트라는 거대한 두뇌 싸움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몇 사신들은 류크가 벌이는 일을 흥미롭게 내려다보며 즐거워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한 사신계 일상에 데스노트를 툭 떨어뜨린 류크.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 물수제비를 띄운 그를 사신 연출가라 부르자.


#3. L은 진 걸까? 


라이토 vs L 승자는 누구인가? 

L이 먼저 죽었으니 두 사람의 대결에서는 라이토가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승자는 L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1. 와미즈 하우스, L의 준비성 

두 사람의 싸움에서 라이토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 데스노트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데스노트의 존재조차 알아내야 했던 L은 항상 라이토의 행동을 뒤쫓고 추리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머리를 지녔다 해도 데스노트와 사신의 존재, 그리고 규칙까지 알고 있는 라이토를 따라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L은 심지어 그 불확실성까지도 대비하여 후계자를 양성하고 있었다. 물론 여러 목적이 있었겠지만, L이라면 만약 자신의 혹시 모를 죽음 그 이후까지 미리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사실상 니아와 멜로를 이미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고 그의 비서나 다름없었던 와타리에게 혹시 위험한 상황에 빠진 경우에는 모든 정보를 삭제하고 죽으라는 지령까지 내린 바 있다. 이렇게 준비성이 뛰어난 L이라면 아마 죽음까지도 대비하고 있지 않았을까. 


2. 니아+멜로≥L? 

니아, 멜로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두 사람을 모두 후계자로 생각했다는 점 또한 L의 천재성을 증명한다. 니아와 멜로는 모두 대단한 두뇌를 지녔지만, 반면 각기 다른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다.


(출처 데스노트 13권 스페셜편)

니아는 두뇌는 L과 가깝게 치밀하지만 엄청나게 성격이 독특하고 행동력이 낮다. 니아는 L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하는 모습을 자주 L은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공격적이다 싶을 정도로 적극적인 방식을 사용하곤 했던 반면에 (라이토 앞에 나타나서 “저는 L입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니아는 방어적인 추리를 하는 편으로 먼저 나서지 않는다. 생활력, 사교성은 무려 1점이다. (...)

(출처 데스노트 13권 스페셜편)

반면 멜로는 행동이 앞선다. 키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일단 경찰청장을 납치하는 등 공격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에게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고 치밀하지 못하게 행동한다는 단점이 있다. 니아에 대한 열등감도 단점 중 하나. 


L은 두 사람의 단점조차 꿰뚫어 봤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의 장점(혹은 단점이) 합쳐져서야 L 자신에 비견할만한, 혹은 자신을 뛰어넘는 해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발견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멜로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결코 니아는 라이토를 잡아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사라질 경우조차 대비하여 후계자를 두고, 결국 그들이 머리를 합쳐 라이토를 이겼다면, 이 긴 싸움의 승리자는 L이 아닐까? (그래도 진정한 승리자는 류크겠지.)


출처 inven.co.kr


원문: [덕업상권](35) 데스노트를 읽으며 떠오른 단상

http://www.kbs.co.kr/radio/magazine/story/2483038_1020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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