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말고 술자리 말이에요.
금요일 아침. 평일 동안 쌓인 피로가 어깨와 허리를 짓눌렀다. 눈은 시리고 몸도 무겁고. 출근하다 문득,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머리를 스쳤다. 소리 없는 싸움에 지쳐버린 걸까. 꽤나 특별하다 생각했던 나의 일상이 점점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시간에 쫓겨, 사람에 치여 더 피곤했다. 이유모를 외로움이 나를 지독하게 괴롭힌 아침이었다.
'기사님, 한남 오거리로 가주세요.' 역시나 피곤한 점심을 보내고 퇴근한 뒤, 술자리로 향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오늘은 '아나따' 생일 기념 자리. 약속 장소인 한남 북엇국에 도착해 첫 발을 들인 순간, 차디찬 밖과 대비되는 습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오밀조밀 앉아있는 사람들의 상기된 볼.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식탁에 가득한 술병과 술잔. '아, 사람 냄새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분위기. 아직 한 잔도 마시지 않았는데 이미 취한 기분이었다.
내가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래서 이렇고 어쩌고 저쩌고. 만나자마자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이면 기억나지 않는 쉬운 이야기들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안주거리다. 이미 아침에 생각했던 고민들은 사라지고 웃음만 남아있다. 푹 숙여지던 고개가 꽃꽂이 세워지고 굽어있던 허리가 절로 펴졌다. 격양된 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아무 눈치 보지 않고 하는 이상한 말들이 오가는 '술자리'가 좋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