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매 순간순간 평가를 받고, 또 평가를 하고 있다. 그 평가의 대상은 다양한데, 단순히 오늘 먹은 점심밥의 맛부터 시작해서, 뉴스에 오르내리는 범죄자의 인성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깊이로 매 순간을 평가하며 살고 있다. 특히, 남에 대한 평가를 즐겨(?)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남에 대한 평가는 술이 있다면 안주거리로 올릴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흥미를 가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씹기" 혹은 "험담"을 하는 것이다.
나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남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사람도 크게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편적인 이슈나 사실 가지고 내가 그 사람 전체를 아는 냥, 호도하고 평가를 내리는 것이 맞는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 보다도 이 이슈가 가지고 있는 가십성에 더 흥미를 느끼며 이를 입에 올리고 있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또 다른 문제는 자꾸 말이 붙는다는 것이다. 세 단계, 네 단계를 지나가면 많은 부분들이 사실과 달라지지만, 이 또한 진실인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게 된다. "~~~ 그렀을걸?", "이런 게 아닐까?" 같은 말들이 "~~ 그랬대!!", "이런 거라던데?" 같은 말로 어미가 바뀌면서 그 이슈에 녹아들고 입에 올라간다. 그러면서 눈밭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서 사람들 사이를 굴러다닌다.
남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이 사람들이 다른 자리에 가면 내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차피 이런 이야기는 당사자 앞에서 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나에 대한 이야기도 내가 없는 곳에서는 신나게 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생각이 들면 이 사람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서 이야기를 나누기가 껄끄러워진다. 그럼 결론적으로 인간관계가 멀어지게 된다.
어떤 이슈에서 떨어져 나온 단편의 파편들을 우리는 각자의 세상으로 가지고 와서 판단을 한다. 마치 까만색 선글라스를 쓰고 세상을 보면 까맣게 보이고, 빨간색 선글라스를 쓰고 세상을 보면 빨갛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노란색의 이슈를 까만 선글라스를 쓴 사람은 까만색으로 보고 까맣다고 하고, 빨간색 선글라스를 쓴 사람은 빨갛다고 한다. 이러면서 이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이 색깔을 잘못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질은 노란색인데, 이걸 보지는 못하고 노란색이 까만색이냐, 빨간색이냐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까만색으로 보는 사람은 저 사람은 왜 빨갛다고 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빨간색으로 보는 사람은 왜 저 사람은 까맣다고 할까? 의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어느새 본질이 어떤 색이지? 는 관심거리에서 멀어져 간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각자 본인의 생각으로 판단하면서 말을 옮기고 다른 색의 안경을 쓴 사람은 이상하다 하며 서로 편을 먹고 상대방을 이해를 못 한다. 하지만 뭐가 진실일까?
우리 각자는 각자의 세상에서는 진실인데, 실제 진실을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