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목요일
오늘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특별히 안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록할만하다.
눈을 딱 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왠지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서 다행이다 싶었다. 언제부턴가 새벽 늦게 자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원래면 7시에 딱 맞춰 일어날 걸 30분이나 일찍 일어난 것이다. 앗싸. 오늘은 좀 편안하게 갈 수 있으려나? 갑자기 머릿속에 '금요일에 연차를 쓸까 말까'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전에 중요한 게 있다. 시간이 좀 남았기 때문에 10분만 침대에 누워 갈까 싶었다. 아침 6시 50분. 출발하려면 많이 이른 시각에 잠깐만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래. 이불 덮고 좀만 누워있자. 어차피 부서도 바뀌었겠다 피곤하면 근무지에서 조금만 쉬어도 되니까.
그리고 난 늦잠을 잤다. 다시 눈을 뜨니 7시 30분이었다. 원래 20분에는 무조건 출발해야 했다. 큰일 났다. 다행히 옷도 갈아입고 양치에 머리 말리기까지 뚝딱 끝내서 몸만 덩그러니 나오면 될 일이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빨리 신호등 불이 바뀌어라 동동 발만 구르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머리 한편에서 잔머리가 굴러갔다. 아니. 내가 지각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닌데. 어차피 늦는 거면 처방전도 갖고 오지 뭐. 다다다 뛰어가서 집으로 돌아갔다. 처방전을 가방에 넣고 버스에 탔다. 운 좋게도 시청까지 가는 버스를 금방 탈 수 있었다. 버스를 갈아 탈 시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게 맞나? 시청에 도착한 시간은 7시 55분이었다. 원래 이 시간대에 오는 버스를 타면 100% 늦는다. 근데 난 비행기 값도 결제해야 하고 식비도 없어서 택시를 타고 가기 싫었다. 자의보다는 타의로 인해 시간을 제대로 못 지킬 것 같았던 나. 그냥 금방 오는 버스를 타고나서 어떻게든 가기로 한다. 그냥 오늘은 늦어도 돼. 아무도 그러라고 말한 적 없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합리화를 했다.
그런데, 도착 시간이 앞당겨졌다. 분명 이 시간대 버스를 타면 늦었는데, 웬일로 일찍 도착한 것이다. 30분에 딱 맞춰 도착한 나. 잠을 못 잤기 때문에 왠지 졸리는 맘을 다잡고 하던 일을 하기로 한다. 다행이다 한숨 쉬었던 나. 왠지 오늘은 운수가 좋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건 느낌뿐이었다. 빠르게 달려왔기 때문에 긴장감이 있었다. 그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렇게 화장실을 두리번, 두리번 걸어 다녔다. 자리를 잡았다. 볼일을 마치고 뒤돌아 봤는데,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렸다. 누군가가 내 근무지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아, XX! 쌍욕이 저절로 나왔다. 나 혼자만 있었어서 직접적으로 듣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계속 생각나서 토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일이 한 명의 볼일로 인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왠지 변기 바닥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우웩. 옆 칸 변기는 아예 고장이 났다. 그리고 그 변기 안에서도 그 광경을 봐버렸다. 헛구역질이 우웩 올라왔다. 갑자기 무서워지기도 했다. 강박 때문에 이 일이 계속 생해서 생각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리고 그 참사(?)가 몇 번 생각나서 떨쳐내고 싶었다. 유튜브를 켜서 내가 좋아하는 블랙핑크 공연 영상과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틀었다.
어찌어찌 시간이 지나 네시. 왠지 오늘 공부는 찰지게 착 착 달라붙었다. 이 잔인한 395일의 사회복무요원 시기에 이런 것이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또 오늘은 간호사실에 내가 좋아하는 초코 강정이 있었다. 이 과자를 먹으니 뭔가 감질맛이 난다. 왜 나는 돈이 없지? 한숨을 하 쉬며 가방에 있는 짐을 주섬주섬 꺼냈다. 어? 가방에 천원이 있었다. 대박! 생각지도 못한 횡재다. 바로 천 원을 갖고 쭉 내려와서 근무지 내 CU로 달려간다. 매운 새우깡 하나를 골라서 '여기요!' 주문했다. 새우깡을 들고 싱글벙글한 채로 공부하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정신 차려보니 어느덧 5시였다.
5시 30분. 퇴근했다. 7시에 학교에 시네마톡 행사가 있어서 기다려야 한다. 한 시간 반이 비는 목요일. 가방에는 책과 방금 공부하던 문제집이 있다. 학교 후문 쪽으로 내려와 도서관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갑자기 항공 값 예약이 생각났다. 사실 난 비행기를 예약할 수 없었다. 있던 돈도 8개월이 되어버리니 다 썼다. 프로 데뷔(?)는 진작에 했다 치지만, 왠지 이 나의 자체적인 엄격함 때문에 꼭 마무리지어야 할 것 같았다.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한다. 모자관계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고 내가 평소에 돈을 달라고 하는 편도 아니라서 카톡으로 말했다. 엄마가 흔쾌히 예약을 잡아주었다. 울 엄마도 돈 없다. 그런데 나를 믿고 표를 끊어주셨다. 우리 엄마가 최고다.
그리고 7시가 됐다. 시네마톡 행사를 들어갔다. 이번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이었다. 일단 <이터널 선샤인>을 게스트의 입장에서 감상을 나눈다는 게 기시감이 들었다. 대화는 잘하고 온 것 같다. 사랑이야기 멜로드라마로서도 탁월하지만, 어떤 인간에겐 특정한 기억이 너무나 아팠어도 지울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기억의 역설에 관해 다룬 탁월한 영화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영화 이야기를 쭉- 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뭐 하죠?'라는 질문이 나왔다. 나는 <매그놀리아>를 말했다. <매그놀리아>는 딥하게 빠지지 않으면 잘 모를 것이다. PTA가 메가폰을 잡아, 자기혐오와 용서에 대해 다룬 영화였다. 마지막 엔딩신에 감명받아 훌쩍 운 적도 있는 나. 그 이야기를 막 늘어놓고 있으려던 찰나 옆 옆에 있는 어떤 분이 '저도요!!!!!!!!!!!!!!!!!!!!!!!! 저도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서로 활짝 웃으면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헐. 이 <매그놀리아>는 진심 나만 아는 줄 알았다. 보통 주위 사람들은 PTA가 뭐하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와 비슷하게 감상을 나눈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내가 당장 내일 길거리에서 만원 주울 확률과 비슷했다. '대화가 통할 수도 있음'이라는 것은 살면서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분이 나에게 뭐라 뭐라 한 건 기억나는데 난 역시 소심이 인지 아무 말도 못 했다. 역시 나는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
글로 적으니 오늘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다. 내일은 신나는 노는 날이다!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