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상황을 15년 정도 겪으면 익숙해져서 웃기다
방금 덮은 책의 이름은 <보건 교사 안은영>이다. 주인공 안은영은 엑소시스트다. 한 명문 중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일하는 안은영. 허술한 것도 많고 잘난 것도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세상을 구하는데 진심이다. 장난감 칼을 갖고 다니며 악령들을 때려잡는 안은영. 세상이 알아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혼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그녀. 그래도 안은영은 귀엽다.
귀엽다. 이 귀엽다는 마음은 소설의 주인공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 주위에 '엑소시스트'가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해봤다. 결론을 내렸다. 아마 별생각 없을 것 같다는 것이 결론이다. 사실 남이사 퇴마사를 하든지 말든지 알바 아니다. 그 대신 '직업이 엑소시스트'는 다를 것 같은 느낌이다. 퇴마사는 뭔가 존중하고 싶은데 엑소시스트는 있어 보이기 때문에 비웃음 당하기 쉬울 것 같다. 내 뒤에 있는 엄마한테 '엄마 제 직업이 엑소시스트면 어떨 것 같아요?'라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참기로 한다. 역시 실없는 소리가 맞으니까 말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른 한국말에 단어의 뉘앙스는 굉장히 중요하다. 내 삶도 사실 퇴마사와 엑소시스트의 사이 중간쯤에 있다. 무슨 말이냐고? 만약 나더러 누가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뭔가 굉장히 심각해 보일 것 같다. 금세 <양들의 침묵>에서 앤서니 홉킨스가 열연했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떠오른다. 아니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인지도가 있는 병이 생각난다. 마음이 간다.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박증이 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노홍철 씨나 서장훈 씨가 나와서 방 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뭐 지극히 내가 만들어온 세상에 근거한 이야기라 사람들 마음 전부는 모른다. 그런데 만약 입장을 바꿔서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잠깐의 단어 활용 차이가 사람의 인상에도 영향이 가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강박증이 있다.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우울증과는 아주 살짝 다른 그런 것이다. 누가 나더러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엥? 싶다가도 '강박증'이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는 그런 것이다. 남들처럼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고, 굳이 이를 신경 안 써도 될 걸 나의 자존심에 근거한 초특급 무리수를 둬 아직까지도 이불 킥을 하는 부분까지 나의 찌질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그런 머릿속의 짐을 안고 있다. 이 뿐일까? 강박 덕에 갖고있는 취향이 있다. 가령 카페에 가서 한가지 메뉴를 시키는 것 같은 일이다. 또 사람들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잘 기억하거나 등등 난 여러모로 주위를 놀라게 만든다. 난 가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뭔가 위로받는 것 말고(내가 위로받고 싶은건 나의 좋은 취직에 대한 격려 뿐) 코미디 시트콤의 각본 쯤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저번에 보니까 ADHD를 소재로 글 쓰시는 어떤 분을 봤는데, 나도 이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첫 장 이렇게 띄워본다. 과연 몇 번이나 쓸지는 모르겠으나, 나 같은 강박이 심한 독자들에게 삼삼한 위로와 웃음을 줄 수 있길 기대해본다. 굳이 따져 정신질환이 맞다고 해서 나는 다르다!라고 똥폼을 잡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다 사람 사는 이야기일 텐데 뭐. 얼마 없을지라도 이 글을 읽은 분들, 또 나의 흑역사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 또 나 자신이 'ㅋㅋ'하며 웃어넘길 수 있길 바란다.
아. 이 글을 쓰면서 흑역사 하나가 추가된 것 같다. 강박처럼 습관이 된 게임을 하다 새벽 네 시까지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나는 이 글에 나의 영혼까지 잠식된 듯하다.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