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노크하는 나. 목적지는 여기저기 다 다르다. 저 오늘 마지막 날이라서요. 어려울 것 같았던 말을 전한다. 아이고, 유동아 고생했다! 달달이 와라. 분명 구시렁대며 일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마지막 날이 된 것이다. 벌써 이 날이 왔다. 병역처분을 바꾸던 날이 언제인지 아직도 정확히 기억한다. 그 전날 너무 긴장해서 심장 터질 것 같았던 기분 역시 여전히 남아있다. 첫날 출근은 또 어때. 창문도 없는 공간에서 땀 삐질 흘리며 책상에 앉아있던 나. 여기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게 지옥 같았는데 세월이 금방 지나갔다. 손님으로 왔다가 안방마님으로 나가는 이 기분. 어느 병동에선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이상했다. 즐거웠나 봐. 그리고 나 많이 자랐나 봐. 일하던 곳에서 '여기 더 있다 가'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오늘 들었다. 난 영원히 들을 일 없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다시 손님으로 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6월 26일. 스타벅스 안. 땀을 뻘뻘 흘리며 스타벅스 2층으로 올라간다. 노트북을 주섬주섬 킨다. 오랜만에 이 일을 하는 기분이다. 다시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 대략적으로라도 조사한 바는 있다. 익선동과 신당동에 대해서 어깨너머 들은 바가 있다. 그리고 망원동과 성수동이 핫플이 된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자료를 구해야 하는데 와이파이가 안 터져서 다급하다. 사실 이곳에 손님으로 온 지 21개월이 지났다. 그전에는 매 해마다 뭘 해야 해서 왔었는데 오랜만에 오니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못하고 있다. 1시간 동안 버벅거리니 친구 A가 왔다. 사실 그 친구는 카톡으로 왜 인터넷이 안되냐고 물어봤다. 오랜만에 해서 그렇지 이런 이유로 해야 할 일을 못했다면 그건 나의 실수다(아마 다음 주 화요일까지 A에게 미안하다고 했을 것 같다).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A가 마음이 넓은 것과는 별개로, 요즘은 이젠 상대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이기적인 일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기적일지도, 또 더 자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만 아는 사람이 되긴 싫으니 고마운 게 있다면 A에게 더 많은 걸 줄 생각을 하는 게 좋겠지.
A는 손에 어떤 물건을 가지고 등장했다. A는 스타벅스 케이크와 공주 왕관을 가지고 도착했다. "야! 축하한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나 챙겨주러 왔구나. "뭐야~" 싶다가 바로 왕관 냉큼 낀다. 사진 한 번 찍는다. 고생 많았다는 말을 했다. A가 고생 많았다는 말을 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싶었다. 23살 때 처음 만났었다. 그때 병역처분을 바꿔야겠다고 혼자서 생각했는데 이제 다 마무리할 때가 됐으니 감개무량이다. A는 이제, 아니 좀 전부터 그냥 슬쩍 온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사실 A가 지금은 독립을 해 손님이기보단 집주인에 가까운 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취 유무 그런 걸 떠나 이제 나에게 단골손님으로 남아 이제 큰 의미를 가진 사람이 된 셈이다.
진짜 오래도 걸렸다. 4년 걸렸다고 생각하고 싶다. 21개월 그냥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로, 많은 기회가 온 걸 두 눈 뜨고 구경하며 시간이 지났다. 물론 좋은 것도 있다. 대학생일 때 못해본 것도 해서 나름 보람 있었고 심지어 작가님 소리 듣게 된 것도 이 기간 덕이다. 고마워해야 하나? 그런데 그런 걸 떠나서 21개월 동안 방황하다 이제야 다시 돌아온 손님이 된 것 같은 사실이 참 새삼스럽게도 놀랍다. 하지만 막상 생각해 보면 방황만 했던 건 아닌 것 같다. 이젠 점점 다른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좋은 조짐인 셈이다. 아직 더 남은 세상이 약간 두렵기도 하지만 뭐 언제는 쉽기만 했나. 사람이 이젠 덜 무섭지만 사랑은 아직까지 낯설다. 그런데 이제까지 나를 뭔가 억제하던 것이 사라지니 확실히 홀가분한 느낌이다. 어떤 느낌이냐면, 뭔가 자기를 표현하는 일과는 떨어져 있게 사는 것 같기도 한 나였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타투를 내일 하기로 했다. 해봤자 얼굴에 레이저 쏘는 것보다 아프겠나 싶지만 그런 건 없다. 내일 다른 손님이 될 생각에 즐겁다. 이젠 이왕이면 불안정한 무언가가 사라져 정착하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
내 미래. 일단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영화평론가가 돼도 좋고 기자가 돼도 좋다. 내가 원하는 글은 재미있는 글쓰기다. 읽는 재미가 있고 나만의 관점이 신선하고 그런 것이 좋다. 한 40 초중반즈음에는 내가 원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주에서 하는 gv는 다 내 거다. 책은 내도 그만 안내도 그만이다. 아직까진 생각 없다는 말씀! 지금부터 30 후반까지 생계유지가 문제다. 내가 아는 모 작가님처럼 회사 좋은데 다니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다. 내가 멋있게 살고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잘 나가야 된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약간 두렵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려면 항상 뭔가 노력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잘할 거다. 이제까지 잘해왔기 때문이다. 원하던 것들이 하나둘씩 이뤄지는 삶이 뭔지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으니 이제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일만 남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