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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Jan 21. 2024

배짱 두둑한 개미들이 코끼리에게 덤비다

<덤 머니> 스포일러 없는 리뷰



게임스탑으로 따라와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어딘가에 사는 애널리스트 키스 길(폴 다노)다. 그냥 직장 다니는 소시민인 키스 길.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 큰돈 만지기는 글렀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희망을 놓지 않는 키스 길. 부인(쉐일린 우들리) 캐럴라인과 ‘게임스탑’이라는 주식에 투자했고 대박을 노리고 있다. 이런 키스 길의 투자방식이 그냥 무작정 얻어걸려라는 아니다. 나름 치밀한 분석을 통해서 게임 스탑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모름지기 돈은 혼자 버는 게 맞긴 하나, 혼자서는 외롭다. 레딧 유저들과 함께 인터넷 방송을 하는 키스 길. 수많은 개미들이 키스 길에게 설득되고 이는 곧 코끼리 같은 부자들과 대립하는 결과와도 이어진다. 여러 사건들이 미국 경제들을 훑고 지나갔지만 개미들은 당하기만 했다. 과연 이번엔 개미들이 이길 수 있을까?


나름 친절해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장점 중 하나는 ‘경제(특히 주식) 용어를 잘 몰라도 이해하기가 쉽네!’라는 점이다. 어떤 이유에서? 바로 영화의 핵심을 드러내는 방식 때문이다. 감독은 이 핵심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캐릭터 개성 살리기’를 선택했다. 글쓴이가 상영관에서 나와 가장 먼저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한 것은 인물들이다. 주인공이 한 명만 있지 않다. 그 주인공들을 A팀과 B팀으로 나누는데, 인물들을 각기 다르게 설정했다. 이 인물들의 속사정은 다 다르다. 누구는 성소수자고, 누구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고, 누구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다. 심지어 세 바운더리에서 직업도 다 다르다. 한 사람은 평범한 대학생인데 어떤 인물은 간호사고 또 다른 캐릭터는 그냥 게임스탑에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이다. 인물들의 속사정이 판이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각기 튀는 캐릭터들에 개성도 부여한다. 주인공 키스 길은 또 다르고, 게임스탑 아르바이트생은 또 어떻고, 간호사는 어떻고 하는 식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반복을 통한 강조만 했을까? 아니다. 이 영화는 인물마다 다른 말 맛(?)을 부여하며 코미디까지 살렸다. 글쓴이가 이 글을 쓰면서 영화를 기억하다 보니 모든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 이유가 인물마다 다른 웃음 포인트를 살렸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인물들을 A팀과 B팀으로 나뉘어 대비를 강조한다. 그 경계를 나누는 기준은 ‘게임스탑 주식 투자자’라는 점이다. 다른 인물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엮이면 그 정서가 절실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이 연출이, 그러니까 인물마다 개성을 살리는 방식이 영화에서 장점으로 발현된 것은 흥미롭다. 개미 투자자들이 똘똘 뭉치는 유대감을 캐릭터의 힘으로 살리면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뭉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지 유추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정말 비판하고 싶었던 대상의 속성과도 어울리는 감이 있다. 이 대상의 특성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그림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를 전복시키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데, 이야기의 구조로 형상화한 감독의 솜씨가 놀랍다. 또 직접적으로 대사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여기까지 가는 과정을 영화가 잘 짰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알면 좋은 것


이 영화를 이해할 때 ‘공매도’와 ‘게임스탑’, ‘레딧’과 ‘로빈후드’가 무엇인지는 알 필요가 있다.


정말 간단하게 설명하면 ‘레딧’은 외국인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다. 특정한 소재가 있다. 가령 ‘아시안 컵 한국 대표팀’이라는 소재가 있다고 쳐보자. 그럼 그쪽에 관심 있는 유저들이 모여서 끼리끼리 대화를 나누는 곳인데, 인터넷 커뮤니티의 속성 상 저속한 표현이 많다. 특히 주식같이 금전적인 문제가 달려 있으면 더 그렇다. ‘게임스탑’과 ‘로빈후드’는 2021년 미국에 실존했던 기업체 이름이다. 게임스탑은 ‘스팀’의 오프라인 형태라고 보면 쉽다. 콘솔/PC게임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파는 곳이다. 중고 게임을 파는 경우도 몇 있다. ‘로빈후드’는 주식 거래 어플이다. ‘~증권’ 어플을 미국인들이 쓴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이런 업체 이름 말고 더 중요한 것은 ‘헤지펀드’와 ‘공매도’라는 개념이다. 헤지펀드는 개인 투자자들이 높은 목표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 자본 그 자체를 말한다. 보통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며 큰 손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매도’는 돈을 빌려 매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격이 올라가는 걸 예상해 돈을 빌려 주식을 매입하고 그만큼 팔아 중간차익을 노리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헤지펀드’는 누구고 ‘공매도’를 이루거나 하는 행위가 누구에서 오는지를 본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의 향기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팬데믹 묘사다. 이 전염병 사태를 거치며 여러 변화가 있었다. 어떤 점에서는 백신이라는 것이 유달리 중요했던 때가 있고, 오프라인 매장이 경제상황에 치명타를 가한 적도 있다. 영화는 이를 철저하게 묘사하며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강한 연대의식을 강조한다. 또 주인공 키스 길의 직업이나 ‘영상으로 기록이 남는다’는 점을 묘사하기 위해 무조건 들어가야 했다.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쓰는 언어의 모습이 바뀌기도 했는데, 이는 번역가의 힘이다. 가령 이 영화에서 인터넷 방송과 관련된 용어는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키스 길이 인터넷 방송을 운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밈을 번역하는 입장에서 일일이 다 살리는 것이 단순히 언어를 저기서 이걸로 바꾸는 것 말고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연히 다 조사해야 그 맥락이 살기 때문이다. 황석희 씨의 열일이 영화의 입체감을 살리는 장점이 됐다.


정상적인 연기는 오랜만이야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폴 다노는 외유내강의 캐릭터를 깔끔하게 소화했다. 폴 다노가 <파벨만스>나 <루비 스팍스> 같은 역할도 곧잘 했지만 <더 배트맨>이나 <데어 윌 비 블러드> <프리즈너스> 같은 센 연기도 잘 소화했다. 이 <덤 머니>에서의 키스 길은 두 종류의 캐릭터에서 <파벨만스> 쪽에 가까운 연기를 한다. 이 인물은 유약한 그냥 직장인 같아 보이지만 마음 안에 굉장히 강한 구석이 있는데, 어떤 대사를 중심으로 이 내면을 형상화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캐릭터를 마냥 센 템포로 해석하지 않은 역량이 돋보였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인물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에 키스 길의 감정선이 더 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보였다. 뭐 실존 인물이 이렇게 무덤덤한 인물(?)이라면 할 말 없지만.



순수 재미는 떨어질지도


이 영화에 대해 아쉽다고 느끼는 점은 장르적인 재미다. 이런 비슷한 소재와 주제로 <빅 쇼트>라는 걸출한 작품이 있어서? 아니다. 플롯에서 여러모로 긴장감이 느껴질 만한 장면이 많은데 왠지 모르게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잔잔한 느낌? 영화 자막으로 센 수위의 밈들이 나오고 큰돈이 걸렸는데도 영화 전체적으로 플롯을 이끄는 방식이 조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폴 다노나 세스 로건, 쉐일린 우들리의 카리스마와 연기가 주는 감정이입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느낌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한 불호여론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임과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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