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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Jan 28. 2024

김성자 씨가 합당한 보상을 받는 한국사회를 꿈꾸며

<시민 덕희> 스포일러 없는 리뷰



꿈이야 생시야


이 영화의 주인공은 경기도 어느 곳에 사는 덕희(라미란)이다. 어느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덕희. 덕희에게 돈이 필요하다. 이유는 얼마 전에 덕희가 보이스피싱을 당했기 때문이다. 3200만 원을 잃은 덕희. 아이들이 묵을 곳이 없어 엄마 덕희는 미안한 맘뿐이다. 마음고생이 심한 덕희. 은행에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실신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경찰에 신고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속에 들끓는 화를 잠재우기란 어려웠다. 위기에 처한 덕희. 그 와중에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김성자 씨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보이스피싱 사기를 직접 친 사기꾼이다. 받은 전화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들린다. "저, 저번에 통화했던 손 대리(공명)입니다. 내가 아는 거 다 말할게요. 그냥 신고만 해주세요. 제보할 것이 있어요."


이거 왜 진짜야?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난 2016년 경기도 화성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김성자 씨가 겪은 일이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된 것이다. 보통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 때 지켜야 할 것들이 몇 있다. 바로 연출로 어디까지 공격하고 누구를 지켜줄 것인가? 에 대한 부분이다. 영화는 후자 ‘지켜줄 것’에 대한 부분을 아주 훌륭하게 소화했다. 이 영화가 정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당연히 후반부에 있다. 여기까지 가는 과정을 주인공 덕희의 관점에서 설득력 있게 풀어냈기 때문에 실화를 가져온 이유가 나름 충족이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 공격할 것인가’라는 점에서는 영화가 실화 전부를 담지 못한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영화 엔딩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 쓸 수는 없겠으나, 이 작품을 보신 분들이라면 거의 다 예상할 수 있을 듯하다. 참고로 기존에 알려진 바와 같이 김성자 씨는 이 일을 해결한 후에 경찰 측에서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셨다고 한다.


범인은 포스터와 제목


이 영화 <시민 덕희>를 보고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장르적으로 재미있었다는 점이다. 범죄물로서 재미있을만한 요소는 잘 갖춘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범죄물로 재미있으려면’ 뭐가 필요할까? 무시무시한 빌런, 선한 주인공, 유쾌한 조연들(사이드킥), 개성 넘치는 캐릭터부터 간단한 플롯까지 <시민 덕희>에는 다 있다. 이런 것들이 그냥 소소한 성취 같아 보이지만 좋은 선택이었다. 이 영화의 기획의도가 뭘까?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그중 하나가 이 실화에 대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잔인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이야기가 어렵다거나 하는 영화였다면 관객들이 극장에서 이 작품을 고르지 않을 것이다. 일단 재미있을만한 건 다 갖춰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당연지사다. 이 <시민 덕희>는 이런 점에서 영리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영리한 영화인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바로 극 중 한 명의 캐릭터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사실 첫 등장만 보면 이 작품과 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소재가 보이스피싱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 인물은 캐릭터가 하는 어떤 행동처럼 계속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존재감은 범죄/수사물의 클리셰를 본작이 비튼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실 글쓴이는 보면서 놀랐다. 이 인물이 궤도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시작해 어디에 도착하는지를 잘 맞춰놓은 것이 기능적이지도, 줄거리에서 무의미하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전형적인 캐릭터가 등장한 탓에 이 인물의 끝마무리가 살짝 모호한 감이 있긴 하지만 흐름을 깨는 정도는 아니다.


상남자식 연기법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라미란 배우의 연기에서 엄청난 박력이 느껴졌다. 라미란 배우는 장면마다 힘을 주고 풀면서 영화를 끌고 간다. 가령 라미란 배우가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영화는 이 장면마다 중심을 쾅 주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실 이 장면이 오기까지 플롯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고 볼 수는 없었다. 이 에피소드 자체는 100% 실화가 아니기 때문에, 허구의 무언가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몇 배우는 뛰어난 감정연기로 서사에 생긴 구멍을 메꾸기도 하는데, 이 <시민 덕희>의 라미란 배우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런 감정연기는 영화 중반부-중후반부에서는 잠잠해진다. 왜? 공간을 바꾸고 난 다음 덕희의 연기는 받아주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야 이 환경에서는 이무생 배우의 악랄한 빌런 연기, 손대리의 서사, 장윤주-염혜란 배우의 코미디가 두드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를 앞두고 자기가 전면에 굳이 안 나서도 되는 걸 잘 아는 듯이 라미란 배우는 튀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 두 격차는 주인공 덕희가 가진 소시민적인 특징과 함께 영웅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었다. 보통 이런 류의 실화 바탕 영화/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강단이 센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몇 있는데 이런 류의 비판을 피해 갈 수 있을 법한 좋은 퍼포먼스였다.


최소한만 유지하고


좋은 점도 많은 <시민 덕희>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완벽하게 매끄럽지는 않았다. 사실 편의적으로 전개하는 감이 어느 정도는 있다. 가령 영화에 등장하는 두 번의 위기가 그렇다. 첫 번째 위기는 주인공 덕희에게 일어난다. 이런 류의 일이 주인공에게 일어난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이 사건을 삽입하고 싶었더라면 전후 조짐에 대해 살짝만 더 들어가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쓴이는 이 두 인물의 퇴장이 밀린 방학숙제하듯 구석으로 밀어 넣기 위해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이는 이 주인공이 공간을 바꾸고 나서 어떤 행보를 보여주는가? 와도 관련이 있다. 이곳이 유럽만큼 경비가 그렇게 많이 들진 않겠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 부분에 대한 묘사가 부족한 것은 실책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글쓴이는 손 대리 캐릭터에서 현실감도 있었지만 반대로 큰 허점도 느껴졌다. 손 대리 자체가 허술하다. 가령 덕희와 통화하는 처음과 두 번째 장면이 그렇게 설득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이 사람의 서사도 빈약하다. 왜? 와 어떻게? 가 없이 그냥 결과만 덩그러니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현실적으로 잘 설정됐으면 이야기가 더 입체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람도 역시 평범한 사람이고 어느 관점에서는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억척스러운 캐릭터들


이 영화에서 느껴진 두 번째 단점은 인물들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글쓴이가 ‘나만 이런가’ 싶어서 몇 후기를 찾아봤는데 많은 분들이 특정 배우의 연기에 대해 코멘트를 했다. 글쓴이는 이 배우 말고 극 중 대다수의 캐릭터에게 느꼈다. 특히 염혜란 배우와 안은진 배우 캐릭터에서 강했다. 염혜란 배우 연기 잘한다. 안은진 배우도 연기 잘한다. 하지만 둘은 전혀 친해 보이지 않는다. 좀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글쓴이는 영화의 많은 부분에서 감정이입의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적으로도 염혜란 배우가 47세고 안은진 배우가 32세라서 15살의 터울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정서적으로 각본과 연출이 이 둘의 관계를 돈독하게 보이지 못한 것 같다. 장윤주 배우가 맡은 역할도 갑자기 화를 내거나 느닷없이 기뻐하고 있다. 이런 각자 자기 색이 강한 요소들이 적지 않게 보이는 것은 영화 감상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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