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이 시니컬한 선배가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랬다. 신입 때 선배들과 첫 회식 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침묵을 어색해하는 편인 데다가 선배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내가 먼저 입을 열였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 선배는 어떻게 좋아하는 영화를 하나만 딱 꼽을 수 있냐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것이 저것보다 낫다, 저것이 그것보다 낫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작년에 너에게 최고였던 영화가 올해도 최고일 거라고 확신해? 왜 꼭 하나를 골라야 해?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너 자신을 알라' 식으로 쏘아붙이는 선배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아니, 난 그저 말 한 번 걸려고 했던 것뿐인데요.
그 후로도 자주 혼이 났다. 열심히 많이 배우겠다고 말했다가 회사가 무슨 학원이냐며,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니 뭘 보여줄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혼이 났다. 혼이 나서 시무룩하게 있으면 하나도 타격 없으면서 상처 받은 척 표정 짓지 말라고도 혼났다. 이 일을 하려면 몇 수를 내다봐야 하는데 너네는 코 앞의 한 수 조차 제대로 보질 않는다, 네 시나리오는 너무 불친절하다, 이런 식이면 영원히 컨펌받을 수 없을 거다... 쓰다 보니 것 참. 그렇게 혼을 낼 때 선배는 정말이지 귀신같이 무서운 사람이었다.
근데 사실 '하나도 타격 없으면서 상처 받은 척하지 말라'는 말은 반은 참말이다. 선배에게 혼이 날 때면 무섭긴 했지만 큰 상처가 되진 않았다. 덕분에 그 이유들을 고민했고 많이 배웠다고도 생각한다. 정말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다시 떠올려 여기에 적기가 참 지난한 일. 그 일을 겪을 당시의 나는 벌벌 떨었다. 그땐 말조차 잘 나오지 않았는데 두려움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모르겠다. 함께 있던 모두는 태연하게 침묵하고 방관했다. 그렇게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태도가 긴 그림자처럼 나를 더욱 오래 괴롭혔다. 아무도 내가 괜찮은지는 상관이 없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나도 상관없는 듯 굴었다. 그 상처는 그렇게 흉이 진 채 멋대로 아물었다.
그때 내게 유일하게 괜찮냐고 물어본 사람이 그 선배다. 아니요, 안 괜찮아요. 그렇게 답을 못하고 있는 내게 선배는 괜찮냐고 물어본 것 자체가 미안한 듯 보였다.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선배가 구원자는 아니었지만. 나는 내 스스로가 구해야 했지만. 선배의 그 괜찮냐는 물음은 무척 큰 힘이었다. 그때의 내게는 그 말 한마디가 정말 간절했다.
그 후로 나는 그 선배를 어미새처럼 따랐다. 따랐다고 해봐야 엄청난 친분이 쌓인 건 아니다. 그 눈치 빠른 선배가 눈치를 못 챌 만큼, 내 마음속으로는 그랬다. 선배랑 얘기를 할 기회가 생기면 최근에 재미있게 본 것과 선배의 의견에 대해 많이 말하고 묻는다. 그럼 선배는 여전히 퉁명스럽게 답한다. 어느 날은 <Sorry, We missed you>라는 영화를 선배에게 추천했다. 며칠 후 영화를 봤다는 선배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에 대해 한참을 말했다. 그래서 별로였냐고 했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괜찮더라, 영화.’
그러고 보니 그 신입 때 회식 자리에서도 그랬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봤다고 한참을 퉁을 주던 선배는 이후에 내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봤냐고 되물었다. 묻기만 하고 별로 더 말이 없었다. 최근에 다시 그 영화를 봤는데 이제야 알겠다. 왜 선배가 그 영화를 봤냐고 되물었는지.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고백한다.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선배가 영화랑 참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