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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비또바 Nov 18. 2020

좋아하는 선배 이야기

 한결같이 시니컬한 선배가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랬다. 신입 때 선배들과 첫 회식 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침묵을 어색해하는 편인 데다가 선배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내가 먼저 입을 열였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 선배는 어떻게 좋아하는 영화를 하나만 딱 꼽을 수 있냐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것이 저것보다 낫다, 저것이 그것보다 낫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작년에 너에게 최고였던 영화가 올해도 최고일 거라고 확신해? 왜 꼭 하나를 골라야 해?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너 자신을 알라' 식으로 쏘아붙이는 선배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아니, 난 그저 말 한 번 걸려고 했던 것뿐인데요.


 그 후로도 자주 혼이 났다. 열심히 많이 배우겠다고 말했다가 회사가 무슨 학원이냐며,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니 뭘 보여줄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혼이 났다. 혼이 나서 시무룩하게 있으면 하나도 타격 없으면서 상처 받은 척 표정 짓지 말라고도 혼났다. 이 일을 하려면 몇 수를 내다봐야 하는데 너네는 코 앞의 한 수 조차 제대로 보질 않는다, 네 시나리오는 너무 불친절하다, 이런 식이면 영원히 컨펌받을 수 없을 거다... 쓰다 보니 것 참. 그렇게 혼을 낼 때 선배는 정말이지 귀신같이 무서운 사람이었다.

 

 근데 사실 '하나도 타격 없으면서 상처 받은 척하지 말라'는 말은 반은 참말이다. 선배에게 혼이 날 때면 무섭긴 했지만 큰 상처가 되진 않았다. 덕분에 그 이유들을 고민했고 많이 배웠다고도 생각한다. 정말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다시 떠올려 여기에 적기가 참 지난한 일. 그 일을 겪을 당시의 나는 벌벌 떨었다. 그땐 말조차 잘 나오지 않았는데 두려움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모르겠다. 함께 있던 모두는 태연하게 침묵하고 방관했다. 그렇게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태도가 긴 그림자처럼 나를 더욱 오래 괴롭혔다. 아무도 내가 괜찮은지는 상관이 없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나도 상관없는 듯 굴었다. 그 상처는 그렇게 흉이 진 채 멋대로 아물었다.


 그때 내게 유일하게 괜찮냐고 물어본 사람이  선배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렇게 답을 못하고 있는 내게 선배는 괜찮냐고 물어본  자체가 미안한  보였다.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선배가 구원자는 아니었지만. 나는  스스로가 구해야 했지만. 선배의  괜찮냐는 물음은 무척  힘이었다. 그때의 내게는   한마디가 정말 간절했다.

  후로 나는  선배를 어미새처럼 따랐다. 따랐다고 해봐야 엄청난 친분이 쌓인  아니다.  눈치 빠른 선배가 눈치를   만큼,  마음속으로는 그랬다. 선배랑 얘기를  기회가 생기면 최근에 재미있게  것과 선배의 의견에 대해 많이 말하고 묻는다. 그럼 선배는 여전히 퉁명스럽게 답한다. 어느 날은 <Sorry, We missed you>라는 영화를 선배에게 추천했다. 며칠  영화를 봤다는 선배는 자신이 받아들일  없는 부분에 대해 한참을 말했다. 그래서 별로였냐고 했더니 한마디  던졌다. ‘괜찮더라, 영화.’


 그러고 보니  신입  회식 자리에서도 그랬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봤다고 한참을 퉁을 주던 선배는 이후에 내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봤냐고 되물었다. 묻기만 하고 별로 더 말이 없었다. 최근에 다시  영화를 봤는데 이제야 알겠다.  선배가  영화를 봤냐고 되물었는지.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고백한다.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선배가 영화랑 참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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