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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비또바 Jun 23. 2021

퇴사할 때의 마음

오늘도 퇴사를 검색하는 당신에게

 4년 5개월을 다닌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다. 고민은 길었으나 결심은 순간이다. 마지막 프로젝트의 마스터 파일을 시사하고 메인 피디님께 퇴사를 말했다. 인사팀에 사직원을 제출하기 전까진 믿지 않을 눈치였다. 어떤 친구는 퇴사 소식에 '너는 별로 퇴사할 것 같지가 않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나도 진짜 퇴사를 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

 슬픈 사실은 퇴사를 할까 말까 계속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삶은 관성처럼 살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사라지는 건 아닐까 싶었다. 나도, 내 삶도.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마는 관성을 끊어내어야만 했다.


 대차대조표를 그려보았다. 좌변에는 회사를 다녀야 하는 이유, 우변에는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이유들로 채웠다. 적다 보니 좌변이 참 무겁다. 얼추 생각했던 것보다도 회사를 다니는 것의 장점은 참 많았다. 일단, 어디를 가면 나를 소개하는 것이 편하다. 회사 이름과 직급만으로도 많은 설명을 대신할 수 있었다. 가끔 사람들이 다니는 회사와 직업에 관심을 보일 때면 내심 으쓱하기도 했다. 고정적인 월급, 두둑한 인센티브, 복지혜택 등 퇴사가 아쉬운 이유는 쉽게 적혀갔다.


 빼곡하게 적혀가는 회사의 장점 목록을 보니 손익은 비교가 안 되는 것 같다. 퇴사를 하면 이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는 게 문득 두려웠다. 당장 이놈의 회사 때려치우고 말어. 그런 홧김의 말은 자취를 감췄다. 그 와중에 주변의 말들도 더해졌다. 요즘이 어느 때인데 다음 직장을 구해서 이직하면 되지 않냐, 굶어봐야 힘든 걸 아느냐, 집에 돈이 많은가 보다 등등.



 문제는 부채 항목이다. 회사를 다니며 잃어버린 내 시간과 감정의 가치를 적는 것이 참 어려웠다. 얼마 전 출근 준비를 하다가 회사가 너무 가기 싫어서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 운 적이 있다. 나를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보낸 내 시간과 감정의 가치는 얼마일까. 십? 백? 아니면 천? 결국 그건 내가 두는 가중치만큼 만들어졌다. 아파도 퇴사하지 못했던 나는 그 가중치를 중요하게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숫자들 앞에서 내 감정의 가치는 위축됐다. 다른 이들의 말처럼 나가서 더 괴로워지진 않을까 두려웠고 퇴사를 하고서도 행복할 수 있을 자신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하지 않으면 여전히 괴로워할 거라는 데에는 슬픈 확신이 있다. 전혀 보람이 없는 업무와 피할  없어 더욱 고통스러운 사내 인간관계, 적기조차 지난한 아픈 상처들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노력해서 들어온 회사인데 아깝게 퇴사를 하냐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그건 이미 회수할  없는 매몰비용이다. 내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마는 1 가구의 삶을 사는 나로서, 내가 나를 지켜야지.


 그렇게 어떤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긴 대차대조표는 무의미해진다. 자산에서도 부채의 비중이 너무 많았던 나의 대차대조표를 정리하고, 내 삶의 가중치는 내가 정하기로 했다. 배수진을 치자. 그렇게 퇴사하는 90년대생이 쏟아진다고 Z세대의 특징을 읊는 기사에 또 하나의 사례를 더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Z세대 인가 봐.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비슷한 지옥을 만났을 때 같은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지극히 소소한 나의 역사를 기록한다. 무엇이 나를 못 견디게 하는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해. 앞으로 마주하게 될 선택지에서 나쁜 선택을 반복하지 않아야지.


퇴사를 가장 실감하는 건 어쩌다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다. 어느 회사, 어느 팀이 아니라 나를 오롯이 소개할 수 있는 말을 골라야 한다. 그것은 조금 불편하지만, 다시 나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어 기쁘기도 하다. 불안함도 물론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 미래와 이미 확실한 불행 사이에서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쉽다. 좋은 선택은 선택 이후의 시간이 만들어 낼 것이다.


 요즘 자주 내뱉는 주문이 있다. '난 뭘 하든 잘할 거야'.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 주는 게 꽤 큰 힘이 된다. 진짜든 아니든, 저 문장을 소리 내어 내뱉어본다. 난 뭘 하든 잘 해낼 거야. 퇴사도 잘했는 걸, 뭐.



*Cover - Pedro C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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