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feat. 더 글로리는 없다

by 뚜비뚜바

반에 A가 따돌림을 당했던 적이 있다.

드라마나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심각한 괴롭힘은 아니지만, 담임 입장에서는 너무 고민이 많았다.

내가 초임 교사라, 반 운영을 잘하지 못해서였을까,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자책과 후회 등



그때 당시 내 입장을 정리해 보면 이랬다.

아이들이 이유 없이 A를 피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의 사건들이 있었고 전후 맥락이 있었다. 아이들이 서로 친해지고 멀어지고 하는 과정을 담임인 내가 관여할 여유도, 능력도 없었다. 친했던 친구들이 멀어져 가는 과정에서 A도 스스로 배워야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시간이 가는 것을 버텨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잘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내가 관여할 타이밍이 있으면 그때 개입하자.라고



그 이후 A가 반 친구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며 하소연을 했고, 관계가 없어 보이는 아이들 몇 명을 불러 그 아이들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분위기가 더 좋지 않은 것 같았고 그래서 리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이들 몇몇을 불러서 내가 알고 있고, 이유가 뭐가 됐든 일대다의 구도만으로도 너희가 학폭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말하기 전에 여러 번 시뮬레이션도 돌려보고 주변 베테랑 선생님께도 조언을 구했지만 요령이 부족했던 걸까. 그 말과 동시에 반 분위기는 좋지 않아 졌다. 아마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담임이 이러이러하게 말했다라고 전했을 테고, 나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것 같았다.



내 경력이 얼마 없어서인지, 운이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극단적인 학폭 사례는 일상 교실에서는 잘 없는 것 같다. 사소한 다툼, 험담이 전해지는 등의 문제로 분위기가 형성되고 한, 두 명의 아이가 배척당하고 뒤에서 수군대는 것들로 드러난다. 이런 분위기는 사실 단체에서는 어디에서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른들조차도 무리를 짓고, 배척하고 남 얘기를 쉽게 전달하는데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에게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최대한 소수인 배척당하는 아이에게 이 일이 큰 상처로 남지 않게 보호하고,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는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멈출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는 방관자였고, 은근한 동조자였다. 반에서 나서는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왕따가 되면 나는 그것을 그냥 지켜보고 그 아이가 혹여나 나에게 다가올까 무서워 말없이 피했다. 왕따를 주도하거나 당할 만큼 반에서 눈에 띄는 학생도 아니었지만 배척당하는 아이를 품어줄 수 있는 배포가 있거나 주도하는 아이들에게 맞설 수 있는 용감한 아이도 아니었다. 매년 교실에서 겪었던 그런 관계와 사건들은 나에게 학창 시절의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누군가에 대한 말을 듣고 전달하는 상황에서는 무조건 말을 아꼈다. 그게 중간은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학창 시절 내내 보고 느끼며 배웠다.




적어도 내가 겪은 실제 교실에서는 드라마 속 동은이나, 연진이는 없었다. 그냥 보통의 아이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지내다가 토라지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또래들보다 조금 더 서툴고, 조금 더 약은 아이들이 서로를 배척하고 상처를 준다. '부족한 담임을 만나서 저 아이들이 서로를 조금은 더 이해해 보고, 그냥 넘겨도 보는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것은 아닐까?' 했었다가도 '어른들도 못하는 걸 쟤들이 어찌하나?' 생각하며 '그냥 이것 또한 배워나가는 과정이겠지, 내가 뭘 어떻게 해.' 라며 포기도 했었다. 결국 다시 방관자이며, 은근한 동조자가 됐던 것은 아닐까? 학창 시절의 트라우마를 다시금 마주하는 교사가 되어, 애는 쓰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그때의 교실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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