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
중2 여자 아이들의 교우 관계는 변화무쌍하고 참 피곤하다.
조용하게 친구들과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B가 찾아와서 배가 너무 아파서 조퇴를 하겠다고 한다. 착실한 학생인 B가 아프다고 하니, 보건실에 다녀왔는지 묻고, 다녀왔는데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니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서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조퇴를 하도록 했다.
다음 날 우연히 담임반 아이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니 무리가 달라져있다. B가 어두운 얼굴로 혼자 터덜터덜 걸어간다. ‘아, B가 A와 싸웠구나.’ 여자아이들의 관계는 이토록 확연하게 드러난다. 누구와 밥을 먹는지, 이동 수업에서 누구와 가고 누구와 앉는 지만 봐도 단 번에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상담을 하고 싶다고 찾아와서 울며 하소연을 한다. 예민한 날이라 짜증을 조금 냈는데, 그렇게 됐다고 한다. 나에게는 참 별것도 아닌 일로 저러네 싶은 일이 B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이고 환경이다.
전교에서 유명한 애들이 다 몰려와 생활 지도하느라 힘든 동아리 교실에 들어서는데, 진하게 화장을 한 여자아이들 무리가 반반 나눠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다.
‘뭐지, 이 낯선 조용한 교실 분위기는? 너무 좋은데...?’
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 아이들의 냉랭한 분위기 덕분에 나만 신나는 조용한 동아리 시간을 보냈다.
나도 지나온 시기이기도 하고, 여초 집단을 적지 않게 경험해 왔기에 저경력 교사라도 예측하기 쉬운 문제는 여자 아이들의 교우 관계 문제였다. 그래서 반 아이들에게도 학기 초부터 강조한 것이 ‘제발 험담 하지 말아라. 험담 할 바엔 제발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뒷담화해서 돈독해지는 관계는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 등등 귀에 못이 박히게 말했다.
노력의 효과가 없는 것일까? 그나마 조심한 것이 이 정도인 것일까?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끼리 하는 뒷담화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결국 돌고, 돌아 나에게 와서 열린다. ‘알고 싶지 않아. 오지 마! 제발 오지 마!’라는 눈빛을 보내도, 꼭 판도라의 상자를 기어이 들고 와 내 얼굴을 상자 안에 친절히 넣어주는 아이 한, 둘이 있다.
예민하고, 감수성도 풍부한 시기에 서로에게 관심도 많고, 내 편을 간절히 만들고 싶다 보니 이런 친구, 저런 친구와 친해져도 보고 멀어져도 보면서 자신과 잘 맞는 친구를 만들어 가는 시행착오의 과정인 거겠지.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 일이지만 나 역시도 친구 표정, 말투 하나에 고민하며 배가 아팠던 학생 중 하나였다. 그 시기의 가슴앓이를 알지만, 그래도 간절히 외쳐본다.
“얘들아, 제발 그러려니 하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