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늪

생활기록부가 알려준 뜻밖의 진심

by 뚜비뚜바



기말고사가 끝나고 교실에서 아이들이 방학 전까지의 해방된 날들을 만끽하는 동안, 교무실에서는 교사들의 ‘생기부 지옥’이 시작된다. 본격적인 생활기록부 작성을 알리는 교무부의 쪽지를 시작으로, 상담 일지, 독서 기록, 행동발달, 과목별 세부 특성, 진로 활동, 출결 마감, 동아리 누가기록 등등 도대체 뭐가 그리 많은지 셀 수도 없다.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단어 및 표현 목록도 챙기고, 아이들마다 똑같은 표현을 쓰지 않도록 주의하란다.


‘네??????’



평소 아이들에 대한 기록을 차곡차곡 잘해놓았다면 훨씬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는 시간이지만, 나 같은 하루살이 저경력 교사에게는 기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이다. 맨 땅에 헤딩하듯, 각 반에서 수업 태도가 좋고, 성실한 아이들부터 작성을 시작한다. 의외로 막힘없이 술술 나온다.


‘오 금방 끝나겠는데?’



그러다 난관에 봉착한다. 써줘야 하는 아이들은 한참 남았고 이름도, 얼굴도 아는 아이들이지만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는 것은 그나마 낫다. 두당 10명 이상의 몫을 하는 아이들.


‘수업을 방해하고, 공부에 대한 의욕을 1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라고 써줄 수는 없지 않나? 교과에서 만난 그런 아이들에게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를 선택한다. 문제는 담임 반 아이들이다. 담임 반 아이들의 행동특성은 한 명도 빠짐없이 써줘야 하기 때문에 침묵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럴 때는 아이의 특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긍정적인 단어들을 짜내어 본다. 창작의 시간이다.



모든 일에 시니컬하고 투덜대는 A에게는 ‘평소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표현함.’으로, 말이 많아서 여러 교과 선생님들께 지적받는 B에게는 ‘활달한 성격으로 학급에 활력을 불어넣는 학생임.’으로, 항상 엉뚱한 질문으로 수업의 흐름을 끊는 C에게는 ‘궁금한 점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지녀 발전 가능성이 보임’으로...



시작할 때는 ‘얘네들한테 뭘 써주나.’라는 막막함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지만 검토하며 읽다 보면, 내가 써놓은 아이들의 특성이 전혀 없는 말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미성숙해서 서툴게 표현되긴 해도, 때론 논리적이고, 수업에 활력을 주기도 하며, 적극적인 태도를 지닌 아이들이다. 학부모 민원과 거친 아이들 생활 지도를 겪고 나면 ‘언제 탈출하지.’ 하며 회의감이 드는 이 직업이 때로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갖게도 한다. 내가 짜낸 작은 진심이 너희들 성장의 작은 응원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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