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억도 안 난다.
그래야만 한다.
직장동료의 차 본닛에서 발견된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고등어 무늬 아기 고양이.
그 녀석을 내 손으로 구조하지만 않았더라도 본닛을 열었을 때 야옹하는 귀여운 얼굴과 눈이 마주 치치 않았어도 이렇게 후회할 일은 없었다.
그냥 그날 어미품으로 돌려줬어도 살았으려나? 보통 새끼고양이가 사람 손타면 어미가 금방 냄새로 알아봐서 거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방생하면 이 녀석은 다른 차 본닛에 들어가던지, 밤새 떨다가 먹이도 제대로 못 찾아먹어서 결국은 며칠 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까닭에 내 손을 탄 새끼고양이를 어미에게 돌려줄 수가 없었다.
물론 유기묘보호하는 곳을 알아봤지만, 그곳은 구조한 지 보름정도 지난 뒤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킨다고 하였다.
동료가 고민 끝에 직장 내 게시판이 '집사구함'이라는 글을 올리자고 했다. 그 글이 올라간 30분 동안에 300여 명이나 읽었지만, 하나같이 귀엽다, 예쁘다 하는 쪽지만 보내오지 선뜻 데려가겠다는 사람 한 명 없었다. 심지어 옆 사무실 직원들이 구경하러 와서 시끌벅적했지만, 집사 될 사람은 아니었다. 어느덧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다들 집에 가야 하는데, 저 꼬맹이를 어떡해야 할지 얘기한다. 그러다가 누가 밖에 버리자고 한다. 나는 그런 말만 귀에 쏙 들어온다. 망설인 끝에 결국은 내가 데리고 오기로 했다. 당분간이라고 했지만, 속으론 아니었다.
집으로 가기 전 동물병원에 들러서 간단한 진료를 했다. 4주 된 수놈이었다. 진드기도 없고 건강상태도 좋았다. 처방해 준 구충제 등을 복용해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렇게 우리의 동거는 시작되었다. 나와 12살 고양이 꽃순이 그리고 그 꼬맹이. 그러나 처음 다짐과는 달리 현실은 냉혹했다.
바로 합사를 시키지 않고 1주일의 시간을 가졌다. 약효를 보려면 5일 정도 걸리는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공간에 있으면서 서로를 관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주일 뒤에 드디어 합사 도전. 하지만, 실패했다. 이 꼬맹이의 에너지는 텐션이 너무 높아서, 12살 노묘와 나에겐 감당불가였다. 꽃순이의 밥그릇부터 공격해서 밥그릇을 꼬맹이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옮겼다. 그랬더니 꽃순이가 이 꼬맹이 활약시간엔 물 한 모금 못 마시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꽃순이도 변했다. 더 이상 출퇴근때 해주던 뽀뽀도 하지 않았다. 기분 좋을 때 내던 도로롱거리는 골골 송은커녕 평생 안 하던 하악질만 나에게 해댔다. 아무래도 내가 원망스러웠으리라.
밤에는 잠을 자야 하는데 꼬맹이가 자꾸 놀자고 한다. 무시하고 잠이 들라하면 내 머리맡에서 또는 내 귀에서 야옹하며 하염없이 운다. 정말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후엔 서로 적응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주일이 지나고 2주가 더 지났지만, 합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항상 꽃순이는 피하거나 도망가고, 꼬맹이는 공격하거나 쫓는다. 꽃순이는 냥냥펀치 한방 날릴 법도 한데, 일부러 져주는 건지 하악거리기만 했다. 제일 힘든 것은 밤마다 운다는 것이다. 자꾸 깨우는 바람에 잠을 잘 수 없어서 잘 때는 다른 방에 뒀더니, 인기척만 나도 운다. 자가다 화장실만 가도 울고, 꽃순이가 나와서 돌아다녀도 울고, 캣휠을 타도 울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꽃순이와 나는 이 녀석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히 다니거나 아예 움직임을 자제했다. 한편으론 이 꼬맹이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렇게 울었을까 싶기도 하다. 하도 울어대서 '미아 옹'하는 소리가 실제로 우는 소린지 내 귀에서만 들리는 환청인지 구분조차 안 되는 때도 허다했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동거인가? 한 달쯤 다 되어갈 때 결심했다. 다른 주인을 찾아주자. 사실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온 지 2주 동안은 이름을 짓지 않았다. 같이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3주쯤에 꽃순이에게 온 나비라는 뜻으로 이름을 나비라고 짓고, 귀에 대고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하며 세 번 불렀다. 그랬더니 이 영리한 녀석은 자기 이름을 아는 듯이 부르면 고개를 돌리면서 얼굴을 내 손 가까이 대는 게 아닌가? 첫 교감이었다. 그랬던 녀석을 다른 주인 찾아주려고 하니, 나의 무책임함이 불러들인 이 상황에 후회의 눈물이 났다. 용서를 빌고 싶었다. 이럴 줄 몰랐다고,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속삭였다.
다음날 지인이 당근마켓에 무료 나눔으로 올렸다. 내가 운이 좋았는지, 나비가 팔자가 좋은 건지 친절한 분이 연락을 하셨다. 알고 보니 동네에서 사람 좋기로 유명한 부부였고, 손자가 평소에 고양이 갖고 싶어 해서 연락했다고 했다. 우리는 왜 파양을 하게 됐는지 사연을 이야기했고, 작지만 피부병도 있으니 데리고 가기 전에 신중하게 결정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나비를 데리고 가며 전혀 그럴 일 없다면서 너무 감사하다면서 인사를 하시는 할머니의 미소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왠지 이번엔 제대로 된 주인 만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간밤에 꿈을 꿨었다. 나비가 귀엽다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음식을 줬다. 원래 먹성이 좋던 녀석이 주는 대로 다 받아먹다 보니 배가 너무 불러하다가 결국은 급한 김에 남의 고양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사를 치르듯이 엄청난 똥을 누는 꿈이었다. 사랑 많이 받으면서 클 것만 같았다.
퇴근 후 청소기를 돌렸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방치되었던 모래 한 톨까지 쓸어 담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나비의 흔적을 지웠다.
크리스마스 리스도 버렸다. 댕그랑 거리는 종소리가 날 때마다 그것을 가지 놀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나비가 꽃순이랑 같이 이쁘게 사이좋게 서로 그루밍하면서 술래잡기 놀이하면서 잘 지낼 줄 알았다. 이런 안일한 생각이 이 일의 화근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꽃순이와 지내는 시간 동안 고양이 입양은 생각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꽃순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에도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보내버린 나비를 생각하면 또다시 감담 못할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부턴 함께 보낼 꽃순이와의 소중한 시간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리라.
나비를 데리고 간 할머니에게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사진을 카톡으로 받았다. 사진 속의 나비는 낯선 곳이 어색했는지 다소 얌전한 표정으로 있었다. 침대밑에 들어가서 당분간 줄을 채워야겠다고 했다. 애교 많아서 식구들이 다 좋아한다면서 거듭 고맙다고 하신다. 그리고 몇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잘 살고 있는 사진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나비를 보낸 지 이삼일 정도 지났다. 꽃순이도 녀석이 이제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그동안 나비 피해서 캣타워만 지켰던 꽃순이가 갑자기 침대 위로 점프해서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거실로 튀어나가 캣휠을 구르며 신나게 놀고 있다. 조금씩 한 달 전 모습으로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그 모습을 보며 지켜보다가 피식하며 웃는다. 내 웃는 모습에 꽃순이도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먀아옹~'하며 몸을 부풀리며 다가온다. 어찌 보면 나비가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나에게 왔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