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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May 27. 2022

내 생에 처음으로 엄마가 된 날

갑작스러웠던 첫 아이 출산의 기록

18년 초여름, 만 3년 넘게 다니던 첫 직장을 쉬게 되었다. 첫 아이 출산을 위해서.

출산 예정일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연차+출산휴가+육아휴직이라는 기나긴 쉼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매일같이 반복하던 출퇴근을 하지 않는다니', '해 쨍한 낮시간에 회사에 있지 않아도 된다니' 믿기지 않았다. 나는 평일 낮시간을 활용해서 서울 유명 빵집에 빵지순례를 돌 예정이었다. 주말에는 소위 아기를 낳으면 갈 수 없다는 스테이크집과 막창집을 남편과 함께 방문할 생각이었다.



찰나의 행복

아침을 간단히 차려 먹고 후식으로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초여름 수박을 먹는다. 만삭의 몸이 무거우니 쇼파에 옆으로 기대누워 TV를 틀고 예능을 본다. 점심을 챙겨먹고 서울 유명 빵집을 검색한 후에 오늘의 행선지를 정한다. 빵을 한아름 사온 뒤 쇼파에 누워서 또 TV를 본다. 남편이 퇴근하면 먹고싶은 배달음식을 시켜먹는다. 모든 직장인들의 꿈과 같은 일상이다. 모든 시간이 다 내것이라니!

이 행복한 일상을 누린 지 6일 째, 그 날은 날씨가 아주 맑은 토요일 오전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청했던 하늘이었다. 나는 TV를 보며 쇼파에 옆으로 누워있었다. 점심에는 남편과 스테이크를 먹으러 레스토랑에 갈 예정이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느낌이 들어 누워있던 몸을 앉는 자세로 살짝 일으키는 순간, 뜨거운 무언가가 다리사이로 주르륵 흐르는 게 느껴졌다. 처음 경험한 바지만 나는 직감했다. "이건 양수다!"

당시 임신 36주차로 출산 예정일이 한 달 가량 남았는데 양수가 터지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남편은 너무 당황해서 얼른 119 구급차를 불렀고, (그 때는 너무 당황해서 큰 일이 난 줄 알고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가 오는 사이 잡히는 대로 일단 급한 짐만 챙겼다.

그렇게 도착한 여의도성모병원. 정기진료를 갔을 때마다 본 익숙한 전공의가 말했다. "양수 터진 게 맞고요, 지금 1cm정도 열려서 오늘 중 출산하실거에요." 내 머릿속을 스친 첫 생각은 "오늘 출산이라니, 이제 쉬기 시작했는데...." 예정일까지 한 달 가량 한가한 만삭 임산부의 삶을 기대한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기를 만나기 위해 구매할 것들도 많은데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예정일이 한 달 가량 남았으니, 천천히 준비할 예정이었다. 나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출산에 임박한 산모가 되어 여러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소변검사, 피검사, 공포의 내진까지. 내 배에는 자궁수축을 감지하는 기계가 주렁주렁 달렸다. 그 기계는 뱃속에 있는 아이의 심박과 자궁수축의 정도를 수치로 보여주었다.



무통천국?

오후 쯤 되었을까, 아직 배는 설사할 것처럼 싸르르 아픈 정도이고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무통주사 맞으러 이동하시겠습니다." 그 좋다는 무통천국, 나도 경험하는건가? 아직 본격적인 진통이 오지 않았지만 마치 내게 든든한 방패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취과 의사가 지시하는 대로 새우등 자세를 취했다. 척추에 주사를 맞는 건 처음이라 꽤나 긴장했다. "어? 이상한데..." 상황은 자세히 모르지만, 무통 주사를 연결하는게 녹록치 않아 보였다. "자 이제 소량만 넣어볼게요." 내 척추에 연결된 관을 따라 마취액을 조금 넣겠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갑자기 하반신을 아예 움직일 수가 없어졌다. "제가 지금 만지고 있는데 느껴지세요?" 세상에.... 내 다리를 꼬집어도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내 몸에 상반신만 있고 하반신은 존재하지 않는 느낌.

"저 이거 하반신 마비 다시 돌아오는거에요?" 애 낳으려다가 하반신마비가 되는건가. 본능적인 불안감이 엄습했다. 너무나도 태연한 간호사의 대답이 나를 안심시켰다. "네. 한두시간 후면 돌아올거에요."

그렇게 한두시간이 흘렀고, 하반신의 감각은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하반신의 감각만 돌아온게 아니었다. 동시에 엄청난 진통이 함께 밀려오고 있었다. "무통주사 달아놨으니까, 너무 아프시면 이 버튼 누르시면 되어요." 간호사는 나에게 버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조금 전 하반신 마비를 경험한 나는 배가 아파와도 무서워서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마치 다리가 없는 듯한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기와의 첫만남

갑자기 엄청난 진통의 파도가 밀려왔다. 엄청 아팠다가 잠시 쉬어가고, 엄청 아팠다가 잠시 쉬어가고, 파도와 같은 형상으로 강력한 진통이 나를 괴롭혔다. 너무 아파서 이성을 잃을 지경인 나는 하반신마비고 뭐고 냅다 버튼을 눌렀다. 때마침 진행상황을 체크하러 들어온 간호사가 말했다. "이제는 너무 많이 진행되어서, 무통주사 눌러도 아마 안들을거에요...."

"자 이제 힘주는 연습 들어갑니다." 씩씩한 느낌의 여자 전공의가 들어와서 진통의 늪에서 정신 못차리고 있는 나를 이끌었다."진통이 오면 다리를 잡고 상체를 들어올리면서 힘주는거에요. 잘했어요!" 진통의 파도 속에서도 칭찬은 산모를 춤추게 한다.

정말 아기를 낳을 준비가 되었는지 정기 진료 때마다 뵈었던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이제 정말 아기 낳는거에요. 아까 힘주기 연습한대로 하면 되요." 눈 앞이 노래지고 어질어질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그렇게 두 번의 힘주기 끝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교수님 들어오고 3분도 안걸렸던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조그마한 핏덩이 같은 아기는 나의 가슴팍에 올려졌고, 아기는 엄마 뱃속과 바깥 세상의 급격한 온도차이에 놀랐는지 나의 가슴에 오줌을 누었다. 아기를 낳으면 다들 눈물을 보이고 감격에 운다던데, 나는 경황이 없어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만나자마자 엄마에게 오줌세례를 맞다니, 다시 생각해도 재미있는 첫만남이다. (여담으로 둘째도 낳자마자 나에게 오줌세례를 했다. 태내에서 태외의 급격한 온도차이가 소변을 마렵게하나?)

"저 이제 배 더 안아파도 되는 거에요?"

나의 물음에 교수님의 후처치를 돕던 전공의가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나는 첫 아이를 출산했고,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다. 아니, 엄마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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