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평생 농사를 지으셨다. 어릴 적 부모님과 외갓집에 가면 드넓은 논에서 밭일을 돕기도 했다. 평생 성실하게 농사를 지으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그 마을에서는 나름 부를 일구신 편이었다. 그렇게 슬하의 6남매를 키우셨고, 6남매는 밥벌이하는 성인으로 자라나 도시로 상경했다. 개미와 베짱이에 대입하여 보자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개미형 사람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말했다.
"외할머니네 동네에서 지금 와서 보면 가장 팔자 좋은 사람이 누군지 아니? 농사 열심히 안 지은 사람이야. 몸이 망가진 데가 없어서 노인 되고 보니 제일 편히 살더라. 너희 외할머니 보렴. 등도 굽고 이제 걸음도 잘 못 걸으시잖아."
젊은 시절 베짱이처럼 농사 열심히 안 짓고 딴짓하러 기웃기웃하던 사람들이 노인 되고 보니 건강해서 위너라는 말이었다! 이럴 수가. 이 세상은 성실한 개미형 사람들을 이렇게 배신 때려도 되는 것인가? 내가 이렇게 배신감을 느낀 이유는 나 역시 타고난 개미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모태 개미였다.
엄마가 나에게 저 이야기를 해 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내 평생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학생 때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덕목이니 공부를 열심히 했다. 직장에서는 성실히 일하고 윗사람 신경 안 거슬리게 하는 것이 덕목이니 그렇게 했다. 내 삶을 둘러싼 모든 부분에서 성실히 노력하다 보니,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지 않으면 상심에 빠지곤 했다. 저 이야기는 내가 직장생활 2년 차에 고과에 물 먹고 속상해하니 엄마가 해 준 이야기다. 학생 때의 공부는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 생활 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고과에는 수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쳤고, 그중 하나는 연공서열이었다.
대충 살자
사실 저렇게 말한 친정엄마도 개미형 인간이다. 외할머니-엄마-나까지 3대로 이어지는 슈퍼 파워 개미 유전자를 바꿀 수는 없다. 타고난 성격과 기질을 바꾸려면 다시 태어나는 게 가장 쉽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업무든, 살림이든, 육아든 열심히 하려는 열중 본능이 고개를 들 때면, 엄마가 말해준 이야기를 되뇐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 어? 나 지금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대충 하자 대충!'
그런데 나와 같은 개미형 인간들이 많았나 보다. 몇 년 전 대충 살자 짤이 대유행했고 요즘도 간간히 대충 살자 짤이 생성되고 있다. '노오력'에 대비되는 '대충 살자'는 이렇게 밈이 되어 인터넷을 강타했다.
너무 열심히 살고, 너무 애쓸 필요 없다. 어차피 삶은 내가 계획한 대로, 내가 노력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난 내 삶의 많은 에피소드들이 이를 증명한다. 내 몸과 마음이 편한 상태로 오늘 하루도 그저 즐겁게 살아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