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낳고 복직해서 일하기 시작한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복직 후 지난 일상을 돌아보며 드는 생각은 나는 운이 좋아서 일하는 엄마라는 것이다. 나와 남편은 회사에서 바쁜 부서에 속하여 한창 일 많이 하는 연차인 직장인이다. 우리 부부는 코시국에도 재택근무를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2년 7월까지 나는 올해 연차를 3개밖에 못썼다. 회사는 늘 비상이었고, 긴급보고가 줄지어 있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어찌나 자주 아프던지, 두 달에 한 번은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서 어린이집에 일주일간 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둘 키우는 집이라면 알겠지만, 감기 등 전염성 질환은 절대 아이들 중 한 명만 걸리고 넘어가는 법이 없다. 반드시 두 명 다 걸리기에 한 명이 아프기 시작하면 일주일 이상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회사도 비상, 집도 비상, 나의 머릿속도 비상. 나는 남편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나 어릴 때 피아노 배울 적에 강약중강약 이런거 배웠는데, 왜 내 일상은 강강강강일까?"
네 가지 운수
돌아보면 결코 쉽지 않은 하루하루였음에도, 그리고 지금도 쉽지 않음에도, 우리 부부가 맞벌이로 버틸 수 있는 운수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회사가 위치해서 판타지와 같은 출퇴근거리를 누리고 살고 있다. 두 번째로, 아이 둘 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직장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세 번째로, 시댁이 차로 15분 거리로 가까워서 돌발상황에 대처가 가능하다. 네 번째로, 친정은 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하나 은퇴한 아빠의 지원으로 돌발상황 대처가 가능하다. (엄마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어 평일에는 못 오신다.) 위의 네 가지 운수 중 하나만 틀어졌어도, 지금처럼 아이둘을 키우면서 둘 다 바쁜 맞벌이 부부로는 살아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육아 독립군이라는 말이 있다.
육아독립군이란 양가 도움을 받지 못하고 홀로 맞벌이 육아전쟁을 치뤄야 하는 부부들을 뜻한다. 나는 현재 운이 좋아서 양가 부모님들과 시터선생님까지 육아 연합군으로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복직할 수 있었던 것도 나는 운이 좋은 육아연합군이기 때문이다. 내가 양가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육아 독립군이었다면, 복직해야 하는 회사가 편도로 한시간 반 거리에 있었다면, 과연 나에게 '복직'이라는 선택지가 있었을까? 이러저러한 이유로 누군가에게 복직은 일찌감치 아예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 육아를 하는 엄마의 곁에서 도움의 손길이 받쳐주지 않으면 다시 일터로 나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그 도움의 손길이 사회적 지지망 없이 오롯이 개인적인 환경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맞벌이 하면서 육아하기 어려운 세상임을 방증이라도 하듯이 합계출산율은 최근 몇 년간 곤두박질쳤다. 이에 따라 일가정양립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고, 기존 제도들도 개선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변화들이 정말 반갑다.
또래보다 조금은 빨리 임신, 출산, 육아, 복직까지 경험한 나에게 친구들은 묻는다. "나는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살아? 할 만 해?" 사실, 할 만 하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할 만하다고 대답은 못하겠다. 친구들의 "할 만 해?"라는 질문에는 임신과 육아 그리고 커리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녹아있다. 내가 적어가는 이 글들이 "할 만 해?"라는 두려움 섞인 질문에 대한 답이 되길 바란다.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이들에게, 육아와 일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나같은 분들에게, 이 책이 한 줄기 용기 혹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운이 좋다면 나의 소박한 글이 육아 관련 제도를 고민하는 분들께 닿아 실질적인 힌트가 되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