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OO맘을 보며 고뇌하는 당신에게
스마트폰 속 그녀를 만나다.
육아를 시작하고 내 스마트폰에서는 이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셀럽의 향연이 펼쳐졌다. 소위 말하는 'OO맘'. 스마트폰 속 OO맘은 어찌나 똑소리 나고 야무진지. 그녀는 대개 깔끔한 집에서 예쁜 옷을 입고 아이와 정성스러운 일상을 보낸다. 살림도 척척, 육아도 척척, 외모도 아가씨 같다. 휴대폰 속 그녀들의 정갈한 일상을 보다가 거울 속의 나를 본다. 질끈 동여 묶은 머리, 늘어진 잠옷, 클라이막스는 잠옷에 누렇게 묻은 아이의 분유 자욱.
OO맘은 육아지식이 많다. "4개월부터는 촉감놀이를 통해 우리 아이들의 두뇌를 자극해줘야 해요. 오늘의 촉감놀이는 밀가루를 활용한 촉감놀이에요." 그리고 OO맘의 아이들은 무척 영특하다. "우리 아이 엄마표 영어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알파벳을 쓰기 시작했어요!" 똑소리 나는 육아에 그녀의 아이도 똑똑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는 것 같다. 동시에 나는 좀 부족한 엄마인 양 찝찝한 기분이 든다.
육아에도 정석이 있는 건가요?
우리나라가 초저출산 사회가 된 데에는 집값 상승, 혼인 평균 연령 증가 등 큼직큼직한 사유들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작은 원인들도 있다. SNS의 발달과 육아정보의 홍수 속에서 '높아진 육아의 기준'도 아이 낳아 키우기 두려운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SNS 셀럽인 OO맘뿐만이 아니라, 맘카페에도 똑소리 나는 엄마들이 많다. 야무진 그녀들의 육아 일상과 해박한 지식을 보고 있노라면, 나와 같은 평범한 엄마는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SNS와 맘카페를 통해 퍼지는 육아지식들은 육아에도 정석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학생 시절 수학의 정석, 성문기초영문법처럼 말이다.
파놉티콘에 갇힌 죄수, 탈옥하다.
파놉티콘은 죄수를 교화할 목적으로 설계된 벤담의 원형감옥으로 중앙의 감시 공간을 어둡게 처리하여 죄수로 하여금 스스로 규율에서 벗어난 수 없도록 만들고, 점차 규율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감시하게 만드는 곳이다. (출처 : The Science Times, 공채영 객원기자, 2005)
'왜 나는 저 엄마들처럼 아기에게 다양한 경험을 주지 못할까?' '저 엄마들은 비슷한 월령의 아기를 키우는데 집도 저렇게 깔끔한데, 왜 우리집은...' 나는 스마트폰 속 육아 세계를 보며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내가 마치 '파놉티콘에 갇힌 죄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파놉티콘에 들어간 죄수.
억울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에게 항상 최선을 다했다.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으며,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만 해도 엄청난 고강도 노동이다. (물론 노동만 있는 것은 아니고 행복이 함께하는 노동이다.)
나는 파놉티콘을 뛰쳐나오기로 결심했다. 탈옥을 감행한 것이다. SNS 셀럽들을 언팔했고, 맘카페도 꼭 알아야 할 정보가 있을 때만 들어가기로 했다. SNS와 맘카페에서 해방된 육아는 생각보다 할 만했다. 아니 더 나았다. 수많은 정보들을 접하며 육아에는 정석이 있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질이 매우 다른 아이 둘을 키워보니, 육아의 정석이 있다 해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마다 기질이 다르고, 양육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가정에 주어진 환경에서 아이들과 소중한 일상을 보내면 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 높아진 육아의 기준을 따를 필요도 따라야 될 의무도 없다.
오늘도 OO맘의 육아 일상을 보며 고뇌하는 당신에게 이 글을 바친다. OO맘은 그것이 직업이다. OO맘을 브랜드화해서 육아 관련 제품도 팔고 책 공구도 진행한다. 우리가 일상 속 무수히 접하는 일종의 마케팅이다. 오늘도 고생한 당신의 육아에 박수를 보낸다. 당신의 육아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고생했다고 어깨를 토닥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