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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Oct 10. 2022

출근시간은 9시까지, 등원시간은 9시 이후

때는 2019년, 우리집 첫째 별이는 나의 직장 복귀로 인해 동네 가정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의 가정어린이집이었다. 별이는 한국나이로 2세였으니, 가장 막내반에 입학을 했다. 가정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서 왜 우리 사회가 맞벌이하면서 아이 키우기 힘든 사회인지 절감했다. 여담으로 너무 어린 나이에(한국 나이 3세 이전) 어린이집에 보냈던 것이 다소 후회가 된다. 다만 직장에 복귀를 앞둔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이를 맡기는 순간 '을'이 되었다.

어린이집 등원이 결정되고, 그 때부터는 나와 아이뿐이었던 육아의 세계에 '어린이집'이 끼어든다. 내가 대가를 지불하고 어떠한 서비스를 받을 때, 내 평생 나는 고객으로서 어렴풋이 갑의 대우를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어린이집에서 보육서비스를 받으면서 나는 아이를 맡긴 어린이집에서는 절대 내가 고객이자 갑의 위치에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보육료를 내지만 묘하게 내가 을이되는, 종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구도였다.(어린이집 보육료는 국가에서 지원해주고, 결제는 이용가정에서 한다. 따라서 내 통장에서 돈이 어린이집으로 지급되는 구조는 아니다.)

어린이집 앞에서 내가 을이 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아이를 맡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직 의사표현을 문장으로 할 수 없는 어린아이를. 두 번째 이유는 어린이집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부모는 알기 어렵다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운영에 있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더라도 이것저것 요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린이집에 밉보였다가 혹시라도 아이가 해코지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의 두마디가 남긴 숙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보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복직하면 아이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하면 되겠다.' 아이의 등원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심플했던 나의 생각은 처참히 부서졌다. 어린이집 입학 전, 신입생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이었다. 아직 봄바람이 불기 전 스산한 날씨였다. 막내반에 입학하는 학부모들이 참석 대상이었고, 전반적인 원 운영에 대한 설명을 듣는 시간이었다. 이것저것 원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원장선생님의 단 두마디만 기억에 남았다. "어머님, 막내반은 낮잠 안자고 대부분 점심먹고 하원해요." "우리 원 아이들은 보통 9시 이후에 등원해요. 조부모님 가까이 안계세요?"


이 두마디가 나에게 남긴 숙제는 어마어마했다. 첫 번째로, 나는 당장 점심무렵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해서 우리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돌봐줄 사람을 구해야 했다. 점심무렵부터 우리 부부 퇴근까지의 시간을 따져보면 오후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였다. 매일매일 7시간 아이를 돌봐줄 분이 필요했다. 이 때부터 우리집의 베이비시터 구하기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로, 내 출근시간이 9시까지인데 9시 이후에 등원하라고 하니 등원을 도와줄 사람을 추가로 구해야했다. 이 부분은 죄송함을 무릅쓰고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렇게 복직 후의 양육환경을 조성했다.


첫째 별이 기준으로 아침에는 조부모님과 등원, 9시부터 12시까지 어린이집,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시터선생님과 일과를 보내게 되었다. 나의 복직으로 아이는 내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조부모님, 어린이집, 시터라는 세 돌봄주체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었고, 수많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복직을 결심하기 전에 이러한 현실을 모두 알았더라면, 나는 과연 과거의 나처럼 용감하게 '복직'을 택할 수 있었을까?



순응을 택하다.

글을 여기까지 읽은 분이라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리동네 가정어린이집은 9시 이전에도 받아주던데." "우리동네 어린이집은 두살배기 막내반도 낮잠 재워주던데." 그렇다. 가정어린이집 운영은 동네의 분위기에 좌우된다. 9시 이후 등원을 선고 받은 후로 동네 카페 및 내가 속한 구의 맘카페를 검색해보았다. 내가 살고있는 동의 가정어린이집들은 별로 맞벌이친화적이지 않아서, 9시 이후에나 아이를 받아준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 중 늦은 등원시간에 대한 불만글도 있었으나, 이미 형성되어 있는 동네 가정어린이집들의 문화를 바꿔놓기에는 그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나도 불만을 제기하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 내가 불만을 토로함으로써 단기간에 바뀔 조건이 아니라는 생각에 순응을 택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어린이집 신입생 엄마들과 안면을 트고 친하게 지내면서, '나의 의견'을 '엄마들의 단체의견'으로 진화시켜 어린이집에 요구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복직을 하면서 현생이 바빠서 아이 엄마들을 만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별이와 같은반 아이 엄마들도 나와 같은 처지의 복직한 엄마들이었기에 오리엔테이션을 제외하고는 얼굴 마주할 일이 없었다. 더군다나 9시 이후 등원 지침 때문에 대부분 아이들이 조부모님 혹은 시터와 등원해서 어린이집에 오며 가며 얼굴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어렵사리 1년 간 첫째 별이를 가정어린이집에 보내며 버텼다. 2020년에는 별이가 직장어린이집에 입학을 하게 되면서 한결 숨통이 틔였다. 임신육아종합포털에 들어가서 우리동네 가정어린이집을 검색해보면 평일 운영시간 07:30~19:30으로 적혀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있다. 가정어린이집은 마치 소규모 자영업과도 같아서, 동네분위기에 따라 원장 입맛대로 운영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가정어린이집 운영이 맞벌이친화적으로 개선되어야 1년 육아휴직 후 두살배기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엄마의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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