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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Jan 19. 2023

나는 팀장 킬러다.

15년 1월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덟 명의 팀장님이 저를 거쳐 갔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매년 팀장님이 바뀌었다고 봐야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저를 만난 팀장님 중 소위 말해 직장생활이 잘 풀린 분은 없습니다. 제가 만난 팀장님 에피소드를 엿들은 제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저에게 말합니다. 

"야~ 너가 팀장 킬러네!"



제가 만난 팀장님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기업에서 선호되는 리더의 자질을 알 수 있습니다.

1. 무척 성실하고 회사에 헌신하는 타입이었습니다.

똑부/똑게/멍부/멍게의 4분면으로 나눠 보자면, 제가 만난 팀장님 모두 똑부 혹은 멍부 유형이었습니다. 즉, 게으른 팀장님은 아직 만나보질 못했네요. 자리가 자리인지라 팀장을 하면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나 봅니다.

2. 내심 팀장 이상을 목표하고 있었습니다.

대놓고 "임원이 되고 싶다."라고 말씀하시진 않았습니다만, 팀장에서 직장생활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하시는 분은 못 뵈었습니다. 팀장 이상이 되고 싶어 하는 팀장님의 마음은 중요도가 높은 업무를 추진할 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중요한 일에서는 반드시 성과를 내고자 하는 모습에서 어렴풋이 팀장자리만으로 만족하진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렇게 성실함을 탑재하고, 일정 수준의 업무 능력이 있었으며, 내심 임원을 바라는 포부가 있었던 분들임에도 소위 말해 '직장생활 잘 풀린 분'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실 잘 풀리긴커녕 자리보전도 못 하신 분이 대부분입니다. 



신입사원 때 팀장님으로 만난 N팀장님이 생각납니다. 당시 제가 있던 팀이 한 부서의 선임팀이었기에, 다른 팀 대비 팀장의 결정 권한도 많았습니다. N팀장님은 업무로는 흠잡을 데 없는 분이었으나, 직언하는 스타일이었기에 종종 부서장님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결국 연말 인사에서 다른 팀으로 발령받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새로 발령받은 팀이 팀장으로서의 권한이 더 적은 팀이었기에, 본인도 만족하지 못한 채로 보내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다음은 P팀장님이었습니다. 부서장이 N팀장을 보내고 발탁한 팀장이었습니다. 과연 P팀장은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스타일이어서 부서장 비위도 잘 맞추고, 팀원들과도 원활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가을 즈음 되자 정도경영실에서 감사를 나왔고, 이전에 P팀장이 있던 팀에서 이상 영업한 사실이 발각되어 팀원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복직한 후 S팀장님을 만났습니다. S팀장님은 팀원 시절 소문난 일잘러였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미국으로 해외 MBA까지 보내준 직장생활의 엘리트코스를 밟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S팀장님은 팀원들 사이에 무섭기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S팀장님은 업무 진행에 있어 목표치가 높았고, 그 목표치에 도달할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팀원들을 혼내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입니다.

S팀장님을 만나고 몇 개월이 지났고 여름이 되었습니다. 팀장님은 일하다가 "이상하게 머리가 아프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머리를 감싸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며 신음하시다가 결국 응급실을 가셨습니다. 결과는 뇌출혈.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하여 바로 응급으로 개두수술을 하고 팀장 자리는 공석이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매출과 비용을 다루는 현재의 팀에 발령받았고, K팀장님을 만났습니다. 깔끔하게 일처리 하시는 분이었고, 팀원들에게도 항상 존댓말을 하며 나이스하게 대해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K팀장님을 만난 지 4개월 차, 회사에 큰 횡령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우리 부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팀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부서 전체가 난리가 났습니다. 관련해서 현장부터 스탭부서까지 책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인원이 감사를 받았습니다.

K팀장님도 몇 번 감사실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러나 K팀장의 이전 업무 경력이 횡령사건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일들이었기에, 으레 형식적으로 하는 인터뷰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K팀장이 징계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징계의 수위가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결국 팀장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서는 하위 조직을 모두 총괄하는 위치에 있어서 사건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결국 우리 부서에서 K팀장을 포함 두 명의 팀장이 징계를 받는 것으로 얼추 마무리가 된 모양입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팀장님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안 좋은 일로 헤어짐을 맞이하다 보니 마음이 좋지 않더군요. 그저 현 팀의 팀장으로 현 상태만 유지되었어도 좋았을 텐데, 추풍낙엽처럼 팀장 자리를 떠나거나 팀원이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제가 팀장 킬러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팀장들이 잘 풀리기가 쉽지 않은지도요. 사람에 치이건, 사건에 연루되건, 건강 문제이건 팀장 자리를 그저 무탈히 보전만 하는 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은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욱 쉽지 않다는 것이 실감 납니다. 그저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과 운이 따라줘야 자리보전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2023년의 해가 밝았고, 저는 또 새로운 팀장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번 팀장님은 연말에 보란 듯이 승진하셔서 '팀장 킬러'라는 제 징크스를 좀 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팀장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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