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에 불청객이 있다. 불청객은 조금 게으른지 아침에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점심시간 무렵부터 슬금슬금 느낌이 온다. 오른쪽 승모근 부근이 슬슬 결리고 답답한 듯하다. 오른쪽 안구가 묵직하니 답답하다. 그게 이 불청객의 '똑똑똑, 나 또 왔어~'하는 노크소리다.
'망할, 또 왔구나 너.'
기어코 찾아온 너를 내쫓기 위해 괜히 오른쪽 어깨를 돌보고, 목을 오른쪽으로 두 바퀴, 왼쪽으로 두 바퀴 돌려본다. 그러나 밀려오는 업무. 엑셀과 숫자와 씨름한다. 죽 늘어진 숫자만 보다가 멀미가 오는 것 같다. 멀미는 자동차나 배를 타야 생기는 건 줄 알았는데, 엑셀 보다가 멀미증상을 느낄 줄이야. 이 팀에 오고는 흔한 일이다.
그러는 와중 어느새 불청객은 오른쪽 목까지 타고 올라왔다. 우측 목이 답답하다. 고개를 돌리는 스트레칭을 해도, 어깨를 돌려봐도 경직된 느낌은 그대로다. 그 느낌을 문자로 풀어내기 조금 어렵다. 목에 신경줄기가 가닥가닥 길처럼 뻗어 있다면, 그중 한 신경줄기는 완전히 꽉 막힌 기분이다!
오후 두 시가 지나면 본격적인 두통이 시작된다. 불청객은 목을 타고 올라와 내 오른쪽 머리를 지배한다. 욱신욱신 묵직한 고통이 느껴진다. 오른쪽 눈도 지배한다. 커다란 주먹이 오른쪽 눈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 같다. 오른쪽 눈만 감고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고통스럽다. 화장실에 가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잠시 눈을 감고 있는다. 한 삼 분 가량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산적한 업무들아, 오늘만은 제발... 나 좀 쉬게 해 줄래?'
몸의 고통을 정신력으로 이겨내는 게 가능할까? 어른이자 직장인이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사실 고통을 이겨낸 건 아니고, 이겨내는 척하는 것이다. 나이 서른 넘은 직장인이니깐. 결국 오늘도 엑셀과 숫자에 파묻혀 있다가 퇴근. 녹초다. 집에 가는 길에는 최대한 눈을 감는다. 평소 같으면 휴대폰을 봤을 텐데, 휴대폰을 볼 수 없다. 눈을 뜨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불청객이 가지고 오는 고통에는 특징이 있다. 첫 번째, 타이레놀 등 일반적인 진통제가 전혀 듣지 않는다. 진통제 특유의 졸음만 몰고 올뿐. 두 번째, 두통에 고통스러워하다 밤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씻은 듯이 낫는다. 결국 온몸에 긴장을 푸는 '수면'이 확실한 고통 제거 방법인 셈.
재활의학과에서 여러 번 도수치료. 대학병원 통증의학과까지 찾아가서 정밀검사. 지난가을의 건강검진에서는 경추CT까지. 병원의 도움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 외에도 모니터 높이 조정, 바른 자세, 각종 스트레칭과 요가 등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도 해 봤다.
경추성 두통으로 괴로운 직장인은 안 해 본 것이 없다. 보통 치료받은 직후는 좀 낫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슬금슬금 불청객은 찾아온다. 대학병원 통증의학과에서는 계속 관리하며 살아가야 할 질병이라고 했다.
수년의 경험 끝에 유일하게 그 불청객을 만나지 않는 확실한 방법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휴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휴가인 날은 100% 두통으로부터 자유롭다. 돌이켜보면 아이를 낳아 휴직했었을 때도 두통이 오지 않았다. 결국, 나의 불청객 경추성 두통은 직업병이다. 고정된 자세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면서 일하는 것. 늘 시간에 쫓기는 심리적 압박감. 숫자를 다루다 보니 높은 업무 강도. 직업병의 타당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 없으면 직장인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크고 작은 고질적인 질병을 앓는 직장인이 많다. 경추성 두통과 영원히 이별하는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퇴사일 것이다. 퇴사와 함께 수입은 끊길 터이니, 경추성 두통과의 이별은 생계를 걸어야 가능한 것이다. 나의 불청객 경추성 두통과의 질긴 인연이 비로소 끝날 날을 고대해 본다. (그날이 오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