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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Feb 06. 2023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피지컬100에 왜 열광하는가

종종 직장생활의 숨어 있는 복잡성에 넌더리가 난다. 직장인은 아침에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점심먹고, 저녁엔 퇴근한다. 그저 한 발자국 떨어져 보면 이보다 평온할 수 없는 삶이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안다. 직장에서의 하루, 그 8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복잡함이 숨어있는지.



업무는 티 나는 일과 티 나지 않는 일이 있다. 티 나는 일은 자신이 하고, 티 안나는 일은 후배인 나에게 미루려는 선배를 보며 '그러려니.' 하면서도 살짝 신경이 쓰인다. 이 상황에 돌파구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없다. 내가 선배가 되는 것밖에. 그저 뒤에서 티 안나는 일도 다 치워주는 것이 지금의 내 역할임에 순응한다. 선배가 더 빛을 발할 수 있게끔 옆에서 도와주는 것도 내 역할임에 순응한다. 가끔은 그 순응이 짜증나고 집어치우고 싶을 때가 있다.



연초에는 팀장이 어떤 사람인지 간파하는 것에 꽤나 많은 에너지를 쓴다. 업무를 어떻게 분배하는지, 어떤 말투로 말하는지, 초조할 땐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하나하나 기억하고 거슬리지 않게 행동하려 나름의 애를 쓴다. 가끔은 그렇게 눈치 살피는 거 관두고 싶을 만큼 넌더리가 난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관건이다. 특히 아직 팀장이 되지 못한 고연차의 선배는 내년에 내 팀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심기를 거슬리게 하면 안 된다. 그리고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 무렵이면 동료평가가 있다. 팀 내에서 결코 적을 만들면 안 된다. 내 편을 만들지는 못할지언정, 척을 지어서는 안 되는 법. 동료들을 대할 때에도 '내가 좀 더 손해보지.'라는 마음으로 꽤나 큰 에너지를 쓴다. 고연차의 선배가 팀장이 되고, 동료평가를 받는 것을 다 떠나서, 남들과 불편하게 지내면 결국 당사자인 내가 제일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무난하게 잘 지내야 한다. 그런데 가끔은 성질 대로 하고 싶어 죽겠다.



직장에서의 하루 그 8시간에는 온갖 복잡한 눈치 살피기와 인내가 담겨 있다. 그리고 조금만 남들을 관찰해보면 과장하기, 수 쓰기 등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함을 알 수 있다. 왜 이럴까? 직장에서 '일 잘한다.'라는 것은 참으로 모호하기 때문이다.



요즘 핫하다는 <피지컬100>을 보고 있다. 첫화부터 눈을 뗄 수 없이 집중하며 봤다. '와 진짜 재밌어. 여보.' 남편도 끌어들였다. 인간의 신체 능력이 저정도까지 해낼 수 있구나 경외감이 든다. 체급 차이가 나서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상대를 이겨내는 역전극에 나도 모르게 열광한다.



스포츠 경기는 하나도 챙겨보지 않고, 몸키우기에도 별 관심 없는 나는 왜 <피지컬100>에 빠져들었나.

<피지컬100>은 심플하다. 이기거나, 지거나. 살아남거나, 살아남지 못하거나. 모호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쾌감이 있다.

<피지컬100>에서 요하는 것은 피지컬 단 하나이다. 게임은 피지컬로 하는 게임이다. 피지컬로 우세해서 이기면 살아남는 거다. 근력을 더 요하는 게임, 순발력을 더 요하는 게임 등이 있을 수는 있으나, 이는 모두 피지컬에 종속되는 속성일 뿐이다. 결국 피지컬로 승부한다는 단순함이 매력이다.



직장인으로 마주하는 일상생활은 모호함이 가득하고, 또 복잡하다. 

일이 깔끔하고 명확하게 마무리지어지는 일이 별로 없다. 여러 부서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직장에서 대부분의 일은 찝찝함을 남겨 두고 하루하루 시간으로 해결된다.

하나의 역량만 키워서는 '일 잘한다.'라는 소리는 못 듣는다. '일 잘한다.'라는 평판은 그 사람이 가진 여러 속성을 두루두루 칭찬하는 말이다.



눈치 살피기, 머리 쓰기, 관계 맺기까지 이 복잡성에 넌더리가 나던 와중에 본 <피지컬100>은 카타르시스일 수밖에. 저처럼 지치신 직장인 여러분, <피지컬100> 한 번 보세요. 다른 생각 하나도 안 나고 그저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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