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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Feb 15. 2023

상무님이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다.

호칭 변경이 뭐길래

올해 초 우리 부서를 총괄하는 상무님이 바뀌었습니다. 팀별로 상무님과 첫 미팅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상무님 : "우리 회사, 님 호칭 캠페인 하고 있는 거 아시죠?"

팀장님 : "네 그렇죠."

상무님 : "서로 님으로 부르는 거 활발하게 하고 있나요? 조직별로 차이가 꽤 큰 걸로 아는데.."

팀원들 : (눈치) "...."

상무님 : "CEO도 님 호칭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저를 그냥 치열님으로 불러주세요."

(상무님 본명이 실제로 치열은 아닙니다. 요즘 드라마 <일타스캔들>을 재미있게 보고 있어, 드라마의 남자주인공 이름을 써 봤네요.)



상무님의 물음에 팀원들이 눈알만 굴리며 대답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 부서는 님 호칭이 활발히 정착되지 않았습니다. 선임, 책임이라는 단순하지만 나름의 직급이 있기에, 직급+님으로 서로를 호칭하고 있죠. 선임님, 책임님 이렇게요. 서로의 이름을 잘 알고 있지만, 이름을 부를 일은 없습니다. 이름 대신 편한 직급이 있으니까요.



회사에서 님 호칭 캠페인을 진행한 지 6년 차인데, 왜 우리 부서에는 왜 님호칭이 정착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보다 직급이 낮은 사원에게 이름+님으로 호칭하는 것은 수월합니다.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저랑 직급이 같은 선임에게 님 호칭도 뭐.. 괜찮습니다. 선임님이라고 부르는 게 더 편하긴 하지만요. 이름+님으로 부르는 데에 큰 거리낌은 없습니다.



문제는 저보다 직급과 연차가 높은 분을 직급 빼고 님으로 호칭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옆자리에 계신 책임님을 재우님이라고 부른다? 팀장님을 동희님이라고 부른다? 상무님께 상무님이라는 직함은 쏙 빼고 치열님이라고 부른다?

(모두 본명이 아니며 드라마 등장인물 이름을 차용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뭔가 불편합니다. 본능적으로 마음이 이를 거부하는 느낌입니다. 팀원들 모두 말은 안 해도 저와 같은 마음일 겁니다. 상무님과 첫 미팅을 끝내고 나왔으나, 모두들 상무님은 상무님으로, 팀장님은 팀장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호칭을 변경하면 조직문화가 좀 더 수평적이 될까요? 보다 자연스러운 방향은 조직문화가 먼저 수평적으로 바뀌고, 그 후에 호칭의 변화가 따라오는 것 아닐까요? 사실 직장생활의 본질은 위계가 있는 조직생활인데, 위계가 없는 것처럼 호칭만 바꾸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수많은 결재라인과 보고라인만 봐도 이곳은 명확하게 직급이 나눠져 있고 그에 따라 책임을 지는 조직임이 분명한데 말이죠.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들이 외국처럼 님도 붙이지 않고 그저 이름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이름으로 부르면 서로 간의 직급 차이가 느껴지지 않고, 더 활발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회사도 스타트업들의 사례를 보며, 조직문화를 먼저 바꾸기 어려우니, 호칭부터 바꾸자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님 호칭 캠페인을 추진하니 님 호칭을 쓰는 것이 맞을 듯한데, 마음의 불편함은 왜 제 몫인 걸까요? 어떤 용자(용기있는 자)가 나서서 팀장님을 동희님으로, 상무님을 치열님으로 부르지 않는 이상, 우리 부서에 님 호칭이 단시일 내에 정착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직에 변화는 어느 정도 새로운 기대감을 불러오는 법입니다. 용자가 나타나서 저보다 먼저 상무님을 치열님으로 불러줬으면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를 뒤따라서 상무님을 치열님으로 부르는 용기를 내 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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