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즈음인 것 같습니다. 우리 부서의 내 또래 신혼인 여직원과 40대 아저씨 책임님들의 대화가 흥미로웠습니다.
A책임(아저씨, 40대 중반) : "너네도 쓰레기는 남편이 버리냐?"
B선임(신혼, 30대 초반) : "아무래도 그렇죠."
A책임(아저씨, 40대 중반) : "역시. 쓰레기는 남편 몫이라니깐? 특히 음식물 쓰레기. 마누라들이 꼭 제일 하기 싫은 거는 남편 시켜요."
B선임(신혼, 30대 초반) : "ㅋㅋㅋㅋ책임님도 집에서 쓰레기 담당이에요?"
A책임(아저씨, 40대 중반) : "당연한 걸 말이라고 하냐?"
B책임(아저씨, 40대 초반) : "근데 이건 예외가 없어. 어떤 집이던 쓰레기는 남편 담당이야. 나 포함."
A책임(아저씨, 40대 중반) :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거 마누라한테 넘겼다간 쫓겨나."
나이도, 사는 지역도, 결혼 후 지난 시간도 다르지만, 단 하나 공통적인 것. 남편이 쓰레기 담당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대화의 주체는 아니었으나, 대화를 들으며 속으로 뜨끔하기도 하며 웃기기도 했습니다. 저희집 쓰레기 담당도 남편이거든요.
사실 처음부터 남편이 쓰레기 담당은 아니었습니다. 신혼 때에는 제가 쓰레기를 더 많이 버렸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으니, 제가 휴직을 하게 되었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쓰레기를 들려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저희집 쓰레기는 자연스레 남편이 맡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멀끔히 차려입고 쓰레기를 든 30대 중반의 남성을 만났습니다.
'저 집 역시 다르지 않구나. 쓰레기 담당은 남편이 국룰인 건가.'
살짝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 매일 출근길 쓰레기를 버리는 우리 남편 생각이 났습니다.
가정 내 집안일은 팀플레이입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남편이 해야 하고, 남편이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혼기에는 "이 일은 내 일, 저 일은 니 일"하면서 싸우기도 하지요. 요즘 젊은 부부들 모두 손에 물 안 묻히고 자란 세대니까요.
워킹맘으로 살고 있지만, 남편의 근무시간이 길다 보니 쓰레기 버리기 외의 집안일 대부분이 제 몫이긴 합니다.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고 큰 불만은 없습니다.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쓰레기를 든 남자를 만나니, 매일 아침 출근길에 쓰레기만은 꼭 버려주는 남편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부부간에 '내 일, 니 일' 따져 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일하랴, 아이 키우랴 저와 남편 모두 동동거리며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그저 서로 대견하고 고맙고 또 안쓰러울 뿐입니다.
아 참, 평일에는 쓰레기를 든 남편이 있다면, 주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든 남편이 있습니다. 주말 아침 동네를 거닐다 보면 쉽게 목격하는 광경입니다. 차림새는 츄리닝에 손에 커피 두 잔이 담긴 스타벅스 캐리어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이대는 다양합니다. 30대 초중반의 젊은 남성부터 50대의 아저씨까지. 공통점은 누군가의 남편이라는 것이겠죠.
평일 아침에는 쓰레기를 들고, 주말 아침에는 스타벅스 캐리어를 든 요즘의 남편들. 저는 그저 먼발치에서 보는 이웃일 뿐이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