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똑똑한 아이폰이 종종 제 추억을 큐레이션 해주곤 합니다. '몇 년 전 오늘'과 같은 타이틀로 예전 사진을 큐레이션 해서 배경음악까지 깔아줍니다. 참 친절하죠. 심심할 때 그걸 보면서 '아 이랬었지.'하며 감상에 젖기도 합니다.
아이폰에서 큐레이션 해주는 1년 전, 2년 전이 아니라 10년 전의 내가 궁금해졌습니다. 안개가 뿌옇게 낀 듯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은 제가 결코 도전적이고 비범한 삶을 꿈꾸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10년 전의 저는 파릇한 대학생답지 않게 지극히 온건주의자였습니다.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을 꿈꿨습니다.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 적당한 연봉, 적당한 워라벨, 적당한 시기에 결혼, 아이는 둘 정도. 뭐 하나 특출나게 뛰어나지 않지만, 뭐 하나 빠지지도 않는 삶을 바랐습니다. 과락하지 않는 것이 사실은 더 어렵지요. 저는 사실 욕심쟁이였을지도요.
지극한 온건주의자는 10년이 지나 삼십대가 되었고, 결국 바라던 대로 적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10년 전부터 제가 했던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제 삶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과분한 삶일지도요. 10년 전에 대학생이던 제가 바라던 모습대로 살고 있으니. 저는 꿈을 이룬 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가슴 한 구석이 조금 헛헛할까요?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0년 전 제가 멀리서 보았던 적당한 직장, 적당한 워라벨, 아이는 둘 정도 낳고 가정꾸리기는 멀리서 보면 참 안온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안온함 속에 있는 지금, 제 일상을 가까이서 보면 결코 안온하지만은 않습니다.
한창 일 많이 할 연차의 직장생활에 아직 엄마 손길이 많이 필요한 영유아 둘 육아까지. 어제는 감기에 걸린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못해서 친정 도움으로 돌려막고 출근했습니다. 안온한 삶의 틀을 만들어 놓았더니, 제가 삶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이 저를 이끌고 있더군요. 저는 헉헉대면서 따라갈 뿐이고요.
아이들을 맡겨놓고 오랜만에 나간 모임에서 당시 미혼이었던 친구들이 제게 부럽다고 했습니다.
"나는 아직 결혼 문턱에 발도 못 걸쳤는데, 출산까지 했으니 부럽다 야."
"그런가? 그런데 생각처럼 그리 평온하진 않네.."
아마 멀리서 바라보는 제 삶이 참 안정적으로 보였나 봅니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와 직접 경험하는 것은 참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당시 제 소원은 아이 우는 소리 없이 한 끼 편하게 먹어보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세상 부러워 보이는 삶도 실제로 경험하면 그 나름의 시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일상의 시름을 어깨에 얹고 그저 묵묵히 살아갈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종종 맛있는 커피도 먹고, 좋아하는 드라마도 보며 시름을 잠시 잊을 뿐입니다. 운 좋게 깔깔대며 웃을 일이 있으면 더욱 좋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