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리 Mar 21. 2023

꽉 찬 지하철 한 대 정도는 보낼 여유

아침 출근길, 제가 서 있는 플랫폼으로 지하철이 한 대 들어옵니다. 열차 앞머리부터 휙휙 눈앞으로 지나가는데 심상치 않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열차 차창이 시커멓게 보인다는 것은 사람이 꽉 차 있다는 것. 아마 이번 열차를 타면 회사에 조금 더 빠르게 도착할 수는 있겠으나, 옴짝달싹 못한 채로 끼어서 내릴 즈음에는 콩나물시루가 되어 있겠지요.



다음 열차는 언제 오나 천장에 매달린 배차 간격을 알려주는 모니터를 바라봅니다. 다행히도 곧 열차가 들어오네요. 2분에서 3분 정도만 기다리면 조금 더 널널한 열차를 탈 수 있겠습니다. 방금 온 꽉 찬 열차를 그냥 보내고, 다음 열차를 타기로 마음먹습니다.



원래의 제 성미 같으면 꽉 찬 열차를 타고 회사에 조금 더 빨리 도착하는 편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일상의 순간에서 조금 더 여유 있는 선택을 하고자 합니다. 안 그래도 바쁜 일상에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어줄 여유가 필요하니까요. 



돌이켜보면 이번 열차 놓쳐도 2분에서 3분만 기다리면 널널한 새 열차가 들어옵니다. 5년 전의 저 같았으면 그 2분에서 3분이 아까워 꽉 찬 열차에 몸을 실었을 겁니다. 이제는 2분에서 3분 정도는 여유롭게 기다리는 선택을 합니다. 시간을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를 보다 쾌적하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특히 하루의 시작인 출근길의 쾌적함은 매우 중요합니다. 쾌적한 기분에서 '오늘 하루 잘 살아낼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샘솟기도 하니까요.



아직은 2분 정도의 여유를 부릴 깜냥뿐입니다. 2분이 5분이 되고, 5분이 10분이 되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릴 적에는 나이 먹는 것이 무조건 싫었는데, 확실히 어릴 적보다는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그릇이 조금 더 넓어진달까요. 제게 허락된 그릇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바쁜 와중에도 잠시나마 느긋함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10년 전에 그리던 삶을 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